이국만리 한국땅에서 참사제이자 교사로서, 농부이며 노동자로서 아니라 어린양들을 위해 모든것을 아낌없이 바친 노두주(아르놀드·76세·독일인)신부의 사제서품 50주년을 축하하는 금경축행사가 지난 3월 22일 오전 11시 서산 해평 성담에서 베풀어졌다.
대구대교구장 서정길 대주교를 비롯 왜관 성베네딕또 수도원 이동호 아빠스 및 연길교구장 이디모네오 몬시뇰 등 10여명의 베네딕또회 동료 노사제들과 공동 집전한 축하미사로 시작된 이날 축하행사에는 농촌의 바쁜 일손들을 멈추고 수많은 신자들이 참석, 일제 식민생활에서 부터 6·25동란 등이 민족의 희노애락을 함께 겪으면서 한국 농촌교회의 성장에 기톨올 다져온 노아르놀드 신부의 사제생활 50년을 한마음으로 축하했다.
이날 축사를 통해『남다른 어려움과 고초를 겪으면서도 그 고통을 그리스도의 영광으로 승화시키고 그리스도 사랑의 정신을 몸소 실천한 노신부는 진정 존경할만 한 분』이라고 전제한 서정길 대주교는 사람은 누구든지 맡은바 소임을 다했을때는 평화와 행복을 느낀다고 말하고 『언제나 명랑하고 행복해 보이는 노신부의 모습에서 과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든 활동이 하느님의 사업이었음을 증명』한다고 강조, 노신부의 노고를 치하했다.
한편 이동호 아빠스는 『30년대 당시 미지의 세계이며 암흑의 세계로 알려진 이땅의 전교사업을 위해 홀연히 떠나온 노신부의 생애와 업적은 신앙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아브라함을 생각케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빠스는 『노신부의 근검절약한 생활을 비롯 기도하며 일하는 사제생활 50년은 그야말로 주는 생활이며 희생의 생활이었다』고 강조, 노신부의 금경축을 통해 이지역 신자들은 더욱 단합하고 사랑하는 가운데 전교에 앞장 서줄 것을 당부했다.
1905년 서독「바바리아」지방 농가에서 출생한 노신부는 26년 수도서원을 거쳐 31년 사제로 서품된후 이듬해 8월 한국땅에 첫발을 디였다.
만주연길 교구에서 전교사업을 펴온 노신부는 해방이후 공산치하에서도 꿋꿋이 전교사업을 벌이다가 강금, 52년 본국으로 송환됐다.
56년 재입국한 노신부는 점촌 본당과 현재의 해평 본당 주임을 역임하면서 문경군내 주평 성당을 비롯 20여개 공소를 신·증축하는 등 농촌교회의 교세확장 및 활성화에 박차를 가해왔다. 특히 농촌의 불우청소년들을 위해 점촌 해성고등 공민학교를 개설하고 나환자들의 정착촌인 상신원을 세우는 등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서도 많은 활동을 전개, 대지역 사회에 교회의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다.
한편 이날 축하식에는 선산군수를 비롯 경찰서장 등 내외 귀빈들도 많이 참석, 노신부의 지역사회 개발에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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