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한국땅을 밟았던 벽안의 노사제가 56년간의 사제생활을 뒤로하고 이땅에 묻혔다. 오직 사랑하는 한국땅에서 살며 일하고 싶어 끝까지 은퇴를 거부하며 사제의 직분을 다했던 노사제는 서품과 동시에 한국에 파견돼 56년이라는 멀고먼 사제의 길을 한국민족、한국교회의 시련과 영광을 함께한「메리놀」회소속 故기후고 신부 (81歲ㆍHUGH CRAIG)
지난 12월 7일 81세의 고령에도 불구、서울 옥수동본당(주임ㆍ현앙 신부ㆍ메리놀)에서 저녁미사를 집전하고 사제관으로 돌아오던 기신부는 실족、층계를 구르면서 척추를 다쳤다. 명동 성모병원에 입원했으나 워낙 고령으로 의식을 되찾지 못했던 기 신부는 1월 9일 새벽 4시 동료 및 후배사제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영면、주의품에 안겼다.
1899년 미국 메네소타주「미네아폴리스」에서 출생한 기 신부는 25년 메리놀 대신학교를 졸업、그해 10월 동료 5명과 함께 평양에 파견됐다. 평남 영유읍은 산동본당에서 사제의 첫발을 디딘 기 신부는 당시 장면 박사에게 한국말을 배우는 등 목자로서 남다른 열심을 보이면서 이땅의 복음화를 위해 젊음을 바쳤다.
1941년 일본의 태평양전쟁 반발로 42년 본국으로 강제로 떠나야 했던 기 신부는 48년 재차 한국땅을 밟았다.
사제생활의 첫걸음을 디딘 한국땅 한국교회를 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기신부는 북한괴뢰의 터무니없는 야욕으로 6ㆍ25가 터지기전인 1950년 6월 20일 당시 초대교황 사절인 방 주교의 권유로「통신교리」를 시작했다.
혼란과 격동의 연속으로 복음화의 길이 유난히도 어려웠던 시기에 통신교리는 CCK로 이어지면서 지금까지 3만9천7백6명의 수료자를 배출시키는 등 복음화의 요람으로 성장했다. 이같은 성과는 깊은 통찰력과 안목으로 오직 이나라의 교회발전을 위해 자신의 삶 전부를 걸었던 기신부의 철저하고 엄격한 생활자세에 기인한 것으로 주위는 평하고 있다.
청주 인천교구에서의 사목을 거쳐 장호원 본당에서 보좌(?)로 사목을 계속했던 기신부는 75년 사제생활의 큰 기쁨인 금경축을 맞기도 했다.
77년이후 메리놀 본부에서 사실상 은퇴에 들어간 기신부는『사제는 은퇴하면 죽는다』는 소신에 따라 본당사목을 지원하는 등 끊임없는 사제의 길을 걸었다.
전교의 중요성을 통감、영세자 확보를 비롯 예비자 및 신자들의 교육을 위해 교리책을 수십종 번역하는 등 노력과 열성으로 뭉친 삶을 살아온 기 신부의 순명정신은 메리놀회에서는 너무나 유명한 사실.
지난해 휴가차 본국에 갔던 기신부는 고령을 감안、다시 한국에 갈 필요가 있겠느냐는 주위의 염려에『나는 한국땅에서 살며 일하다 죽는것이 소원』이라며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정도로、이땅을 사랑했다.
평소 그의 소망대로 한국땅에서 주의 나라로 떠난 기 신부는 1월 13일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메리놀회 후배사제들이 공동집전한 영결미사를 끝으로 수많은 신자들의 애도속에 인천 성직자 묘지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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