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애국가의 작곡자 故安盆泰 선생(리카르도) 15주기 추모행사가 17일 오후 3시 고인의 유해가 안치된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국가유공자 묘역에서 엄숙히 거행됐다. 안익태 선생의 유족들을 비롯,기념사업회 회장단과 외교사절 및 국내원로음악가 3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된 이날 추모행사에서 참석자들은 세계적인 음악지휘자로 또 작곡가로 세계속에 한국의 명성을 떨치게 했던 고인의 지대한 업적을 기리고 그의 높은 뜻을 추모했다.
현재 우리국민이 다같이 봉창하는「애국가」를 작곡, 자주국민의 의지와 더불어 애국심을 고취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 故 안인태 선생은 지휘봉 하나로 세계굴지의 교향악단을 정복, 한국민족의 우수성을 세계만방에 유감없이 과시한 명지휘자요 작곡가였다.
안익태 선생이 현재 우리나라의 상징으로 정부 및 민간의 제반 의례식의 의전용으로 사용되고있는 「애국가」의 작곡을 구상한 1932년은 우리의 문화까지도 말살시키기위해 혈안이 되어있던 일제치하에 서였다.
당시 미국에 유학하고있던 안 선생은 재미동포들이 집회시 부르는 애국가가 외국민요선율에 의해 불려지고 있는것을 보고 작곡을 착상, 4년여에 걸쳐 현재의 애국가를 완성시켰다.
이 애국가는 왜정의 암제를 벗어나 해외에서 바탄의 나날을 보내고있던 60만 해외애국동포들에게 힘과 용기와 희망을 주는한편 강렬한 애국심을 불러일으켰다.
안익태 선생은 1906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26년 평양숭실중학교를 졸업, 30년 일본국립음악학교를거쳐 35년에는 미국 필라델피아 음악대학을 졸업했다.
37년 유럽에 유학하면서 항가리국립음악학교에서 수학했으며 39년부터 45년까지 당시 세계적인 大잭곡가 리카르도 스트라우스의 수제자로 사사하며 작곡과 지휘의 철저한 기반과 가량을 닦았다.
35년 필라델피아 음대유학 당시 이미 애국가 작곡을 완성, 고국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강렬한 민족흔을 보여주었던 그는 38년부터 자유우방을 비롯 세계여러나라의 유명한 교향악단을 거의 다 지휘하는 열정적인 음악가의 세계를 살았다.
그가 서거한 65년까지 지휘한교향악단은 빠리 콘서트, 런던 로얄필 하모니, 런던 필하모니, 베르린 필하모니, 로마심포니, 비엔나 필하모니,쮜리히 필하모니 등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 특히 38년에는 아일랜드 더불린 국립교향학단을 지휘하면서 애국가를 주제로 작곡한 자신의 작품「코리아 환타지」를 초연, 작곡가로서의 무서운 재능을 인정받기도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지휘봉을 들때마다 고국의 흔을 담은 「교향적 환상곡ㆍ코리아」와 교향시곡「논개」등을 연주곡목에 빠짐없이 삽입, 세계에 우리한국의 음악예술을 소개함으로써 국제적인 음악교류에도 큰몴을 담당했다.
특히「코리아 환타지」는 배달민족의 역사와 아름다운 풍토 순박한 민족성을 표현하고 민족의 단결을 호소한 작품으로서 그가 제1의 연주프로로 하던 국보적인 작품이었다.
45년부터 서거할 때까지 스페인「마을카」교향악단 상임지휘자의 자리를 지킨 그는 54년 스페인 정부로부터 스페인문화발달에 공헌한공로로 국가상인 「스페인 문화상」을 수상, 다시한번 한국의 국위를 해외에 선양했다.
당시 스페인정부는 안익태 선생의 탁월한 음악성을 영원히 남기기위해「안익태거리」를 만들어 그공적을 높이 찬양하도록 배려했다.
음악을 사랑하여 음악과 더불어살았던 故 안익태 선생은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음악을 뒤로하고 하느님품에 안겼다.
고국이 해방되자 제1호로 한국여권을 신청,획득했던 그의 고국에 대한 뜨거운 집념과 사랑은 널리 알려진 사실.
13년동안 이국땅 스페인「마을카」에서 잠들었던 그의 유해는 지난 77년 정부와 국민의 뜨거운 성원속에 고국땅에 안장됐다.그러나 지난 17일 국가유공자 묘역 고인의 묘지앞에서 거행된 추모행사에서 참가 음악인들과 관계인사들은 그의 높은 공적에비해 그를 기리는 행사가 너무 미약해왔다고 입을 모으면서 보다 적극적인 관계기관의 지원괴함께 음악인들의 관심이 촉구돼야한다고 안타까와했다.
이날 추모식에이어 가진 추모비사에서 미사를 집전한 차인현 신부는 미사중 강론을통해 『음악을 누구보다 사랑했던 그는 영원한 음악가』라고 전제하고『그가 남긴 업적의 중요성에 비해 현재의 우리는 얼마나 그를 기억하는가 반성해야할 것』이라고 강조,『음악가들은 물론 모든 국민들이 그를 기억하고 그의 업적을 기릴수있는 배려가 있어야한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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