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는 동심으로 돌아가고 어른은 양심으로 돌아가자!」이것은 10년가까이 우리가 어린이날만 되면 내건말이었다. 짓밟힌 동심과 마비된 양심을 외면하고서는 날마다를 어린이날로 삼고 해마다를 어린이 해로 마련한다해도 헛수고요 헛일이기때문이다.
더구나 세계어린이 해란 갑자기 마련한것이 아니라 1959년 UN에서 어린이인권선언을 한지 스무돌되는 해를 잡아서 온세계에 선포한해이니 미적지근한 체면치레에 그쳐서는 안될 동심의 운동이어서 학대받는 어린이들의 유린된 사람권리 찾아주기가 선결문제였던것이다
특히 세계어린이 해에 일년 내내 내건말은『바르고 슬기롭게 키우자 세계속의 한국 어린이』였다. 그러나 어린 그네들을 바르고 슬기롭게 키우려면 우선 어른들부터 양심바르고 지혜로와야 할것을 말할것도 없었다. 더구나 우리어린이들이 우물안 개구리신세가 안되게 하려면 그들로하여금 한국속의 한국어린이뿐아니라 세계속의 한국어린이임을 깨닫도록 해주어야했었다.
세계 어린이해란「세계ㆍ어린이 해」의 세낱말로 이루어졌디 때문이다. 그런데「해」란 말에는 세가지 뜻이있음을 올해에 들어서서풀이해 보인적이 있는데 한해를가리키는 해(年)의 뜻도있지마는 차지(所有)를뜻하는 내해 네해의 해란 말도되며 이롭기는커녕 해(害)롭다는 해도되기 때문이다.
지난 한해를 돌이켜볼때 도처에서 행사는 푸짐했으나 꼭 어린이 해라야 할수있는것은 많지않아서 연례행사의 연장에 그쳤을 따름이었고 해마다 5월이면 펼쳐지는 어린이날행사처럼 어른들이 어른앞에 생색내는일이 많아서 어린그들에게 해로운 정신적 육체적 공해(害)가 생활의 밑바닥에 그대로 깔린채 엄벙덤벙 한해를 넘기게된셈이다.
이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우리네어른들은「잘한일」에 대한 자랑을 접어두고「잘못한일」에 대한 뉘우침을 앞세워야 할것이니 어머니뱃속에 들어있을때부터 그네들을 잘키우고 못키움은 전적으로 우리네 어른들에게 책임이 있음으로 육체적 건강진단보다는 정신적 종합진단으로 바른진단 바른처방 바른치료를서둘러 죄없이 영문도 모르고 태어난그들에게 생고생을 시키지말아야할것이다
좋은약은 입에쓰다는것을 생각하면서 세계 어린이해에 일어난 몇가지 불상사를 들어주어본다면 지난7월 칠석날 가재잡으로 나갔던 울산 세어린이가 28일만에 살아 돌아왔음을 첫손에꼽아야겠다. 그러나 우리는 어린이유괴를 저주하기에 앞서 어른들의 불참을 나무랄수밖에 없으니、가지고 놀 장남감도 없고 세끼밥말고는 군것질한번못하며 게다기 언제나 꾸중과 횟차리가 기다리고있는「우리집」이 그 얼마나많은가!
그런데 두번씩이나 납치되어갔다가 두번째는 33일만에 살아돌아온 부산의 효주양은 그와는반대로 떵떵거리고 잘사는집의 돈을노린것이니 유괴범의 검은마음 바탕에는「그만한돈 우려내도 죽떠먹은 자리」일것이라는 생각과 잡힌다하더리도「죽기밖에 더하랴」는 사람목숨을 우습게보는 빗나간 생각이 깔려있음을 두려워하지 않을수없는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유괴사건이 78년에는 열차례였는데 79년엔 벌써 25차례에 이르렀으며 드러나지않은 어린이 실종사건은 그보다훨씬 더 많으리란것이고 어린이유괴범의 나이가 점점 줄어들고 있음을 폭력을 휘두르는 청소년의 수가 나날이 불어가고있다는 적신호가 아닐수없다.
「연소자 관람불가」의 영화를 안방에 편히누워 어린이들까지 볼수 있다든가 학교 오고가는길에 벌거벗은 여자의 극장간판을 얼마든지 감상할수 있다든가 어른들이 보다 팽개친 음탕한 어른만화책이나 주간잡지들을 어린이들이 공공연히볼수있다는것도 문제거리였거니와 어린이들을 끌어들여 사행심을 길들이는 전자오락실따위가 학교둘레에 준비한데 서울에만해도 6백군데가 넘는다니 놀랍지 아니한다. 게다가 먹어서 해로운 불량식품이나 부서지기 잘하고 독이든 색칠을한 장난감은 얼마나 어린이들을 괴롭히고 있는가.
이러한 어른들의 몰염치와 부도덕이 어린이해에 줄어들기는 커녕 부쩍부쩍 늘고있음을 생각할때 어린이들을 대할 낯이 없는것이다.
그러나 낙심할것은 없다. 1979년 세계어린이 해야말로 우리나라로서는 새물결이인 정신든해라고하겠으니 꿈자리 사납던 70년대를 깨끗이 작별하고 민주화의 신선한 바람이 이는 80년대를 맞으며 2천년대의 주인공인 오늘의 어린이가 바르고 슬기롭게 자라날 수 있는 새길이 뚫리기 시작한것이다.
건성으로 불러오던「새나라의 어린이」노래가 참마음에서 우러나게 되었다.
우리나라 어린이인구는 14세까지가 1천3백58만 명으로 전체인구의 38.5%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중 국민학교 어린이는 5백64만명이라고한다.
세계 어린이 15억에 비하면 극히 적은 숫자이지만 지구상에서 굶어죽는 어린이가 하루에 8만 명씩이며 죽음에는 이르지않더라도 영양실조로 잘보지도 걷지도 못하고 병으로 비실비실하는 어린이가 몇갑절 더 많으니 우리는 세계 어린이해를 어린이 옹호의 종착역이 아니라 시발점으로 삼아 불우한 어린이의 실태와 통계를 파악하여 어린이를 위한 내일의 청사진을 마련해야 하겠다.
특히 어린이는「교육받을 권리」를 부여받아야하는데 이를위해 서울대교구 각 본당유치원에서 개설한「토요유치원」은 올해의 보람있는 어린이 보살핌의 하나라 하겠으니 이 운동이 전국으로번져 그늘에서 자라는 가난한 어린이들에게도 따스한 사랑의 손길이 닿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세계 어린이 해를 돌이켜보며
행사만발-어른들만 생색
올해는 아동권리옹호 새물결 계기돼
TV공해ㆍ불량식품ㆍ저질장난감으로 어린이는 얼마나 시달리고있는가
바르게 키우려면 어른부터 양심대로
발행일1979-12-25 [제1185호, 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