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명예라기보다는 가톨릭의 자랑이며 군종신부의 확고한 위치가 재확인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1월 1일부로 대령진급과 함께 공군 군종의 최정상인 제8대 공군 군종감에 오른 성민호 신부의 소감이다.
신자수와 사목자수에서 개신교에 비해 줄곧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가톨릭 군종의 역사와 현실이기에 성신부의 감회는 유별난 것이다.
62년 12년 27일 사제서품을 받은 성 신부는 전주 전동보좌 전주교구 대학생련 지도、장계본당 주임 및 부설 매괴병원 원장을 거쳐 66년6월15일 공군 대위로 임관、군종활동을 시작했다.
성 신부는 66년 ○○ 비행장 군종신부로 시작、K2 군수사 군종실장(68년) 공군본부 군종과장(74년) 군종차감(76년)등 요직을 두루거친 후 78년 1월부터는 군종감 대리로 실질적인 군종감의 역할을 맡아왔다.
12년이란 비교적 단기간애에 성신부가 정상을 차지한 것은「일복 많은 신부」로서 73년부터 1년 동안「마닐라」에서 EAPI 교육을 이수할 만큼「남다른 열성이 이룩한 결심」로 평가 받고 있다. 『남이 하는 만큼 열심히 한 결과인 듯』하다고 겸허해 하는 성 신부는 73년 K2 공군기지 근무시 완공한 성전건립과 全군 신자화 운동과 보조를 맞춘「믿는 사람 되기 운동」을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손꼽는다.
군종감은 군목 법사 군종신부의 업무를 통괄 관장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군 선교 전략상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공군은 이미 김치삼 신부(3대)와 김동옥 신부(6대)가 군종감을 지낸 바 있어 타군에 비해 군종신부의 위치가 확고하게 잡혀있다.
성 신부는 장기 복무 군종신부 확보에 언급、현재로서는 개별접촉을 통한 확보 외에는 별다른 대책이 없다면서『군종활동을 통한 사목자로서의 보람을 찾을 수 있도록 희생적인 뒷받침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주위의 권유로 외로운 군종에의 길을 걸어온 성 신부는 초창기 군종의 어려웠던 여건에 비하면 현재는 후원회의 육성과 군종에 대한 교회의 이해로「최소한의 생활근거」라도 확보할 만큼 윤택(?)해졌다면서 군종활동이 더욱 도약할 수 있도록 계속적인 후원을 당부했다.
성 신부는 현재 군종단 참사 위원직도 맡고 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