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7일 오후 뉴스에서『매일신문 사장 김영호 신부 심장 마비로 별세…』이 소식을 들은 저는 김신부님이 세상을 떠나시다니, 그럴리가 있나(?)하는 의구심에서 한동안 어안이 벙벙했읍니다. 하지만 계속 전해지는 뉴스가 믿기지가 않았지만 믿어야만 했읍니다. 활달하시고 명랑하시던 김신부님이, 건강도 좋으시던 신부님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신부님이 마산성지여중고에 처음 부임하여 오셨을 때 저는 놀랐습니다.
제가 상상했던 모습과는 판이한 날씬한 키에 수려한 얼굴 벗겨진 이마 더우기 금테안경 속에서 빛나는 신부님의 그 눈빛은 한마디 한마디 똑똑 끊어서 말씀하시는 어조와 함께 무척이나 저희 교직원들에게 신뢰감을 안겨 주었읍니다.
주일미사가 끝나면 항상 뜰에 나오셔서 교우 한사람 한사람에게 미소를 던지시며 악수를 청하시던 그 손길은 참으로 인정이 넘치는 다정스러움이 배어져 있었읍니다.
또한 신부님께서는 학생조례 때마다 인간은 말 못할 괴로움의 두 가지를 갖게 되어 있다면서 괴로움은 우리가 노력하고 땀 흘리며 정성을 쏟음으로서 즐거움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라며 훈하를 하시곤 하셨읍니다. 그리고 신부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바로 아는 것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라 하시면서 『우리들의 의식구조와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고쳐야 하며 이러한 정신혁명을 통해서 사회의 부조리와 부정부패를 근절할 수 있다』고 강조하시는 강직한 분이시기도 했읍니다.
…풍개가 먹음직스럽게 익어가는 5월이나 복숭아가 성시를 이루는 여름철이면 신부님은 하등의 구애 없이 과수원을 찾아서 저희들과 얘기를 나누시면서 과일들을 즐겨 드시는 격의 없는 분이시기도 했었는데…
한해가 저물 무렵 저의 세 살 먹은 딸아이가 감기로 인한 폐렴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불행을 학교나 학생들에게 숨겼었는데 어떻게 아셨는지 신부님은 제가 담임했던 학생들과 밤늦게 한 칸 셋방에 찾아오셔서 위로를 해주시면서『폐렴 같으면 내가 고칠 수도 있었는데…애석하게 되었구나…』하시며 몹시 침울한 표정을 지우시던 그 모습이 아직도 뇌리에 선하기만 합니다. 한번은 또 이런 일이 있었읍니다.
마산향군지회에서 기부금 모금과 학생동원관계로 찾아온 기관원과 얘기의 끝을 맺지 못하고 제가 땀을 흘리고 있던 차에 신부님이 오셔서 얘기를 해드렸더니『아、 그것 같으면 거절하겠읍니다. 대의명분이 서지 않은 것은 협조할 수 없읍니다』하시며 딱 잘라 거절하시는 것이었읍니다. 저는 신부님의 이처럼 단호한 결단성에 얼마나 놀랬는지 모릅니다.
그 후 저는 부산 데레사여고로 옮겨왔습니다.
환경도 바뀌고 일에 바빠서 신부님께 소식하나 전하지 못한 가운데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아마 초여름께나 되었을 때 입니다. 전국성직자 모임이 데레사여고에서 열렸는데 뜻밖에 저는 운동장에서 신부님을 만나게 됐읍니다. 연한 곤색 양복에 벗겨진 넓은 이마와 금테안경속의 그 눈빛은 예전 그대로 변함이 없었읍니다. 그 무엇인가의 밀려옴에『신부님…』말을 채 잇지 못하는 저에게『아니、노선생 아닌가! 그동안 별고 없었었나, 퍽 오래간만일세.』하시며 저의 손을 덥석 쥐고 흔드시던 그 모습…
그때 저는 당황해서 저자신이 어찌해야할 바를 몰랐읍니다. 소식조차 전하지 않은 저를 반가워해주시는 신부님께 얼마나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는지. 그날 오후 저는 신부님을 모시려했으나 신부님의 일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신부님을 뵈온 것이 마지막이 될 줄이야-.
곤색 양복…벗어진 훤한 이마 위에서 향긋한 냄새를 풍겨주던 기름 바른 남은머리카락… 그래서 우리 교직원들 간에는「멋쟁이 신사」로 통했는데 이 멋쟁이 신사를 이젠 영영 뵈올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서글프기만 합니다.
인자하시던 신부님! 때로는 패기가 넘쳐 감히 곁에도 얼씬하지 못할 정도였던 신부님!
주님이 부르신다고 해서 이렇게 갑작스레 주님의 품안에 안기실수가 있습니까?
허나 신부님、이 아픈 마음을 모두 주님의 은총으로 돌리고 참으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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