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간 고아란 응어리를 삼켜온 대구「개미마을」박태헌씨가 지난 20일 오후 2시 개미처럼 모은 돈으로 대봉동에서 전자ㆍTV상회를 개점、자립에 힘찬 발걸음 내딛었다.
「YMCA의 형」이란 별명이 붙여질 정도로 YMCA에서 부지런히 구두를 닦아온 박씨는 이번에 4년동안 근로자 신용협동조합에 저금한 1백40만원과 왜관수도원의 보조비 20만원 근로자 신용협동조합에서 40만원을 융자받아 총 2백만원을 들여 상회를 열게 된 것이다.
박씨는 지난해 9월부터 낮에는 구두를 닦고 밤에는 TV기술학원에 다니면서 8개월째 기술을 익혀왔다. 앞으로 3개월 후면 칼라 TV과를 마지막으로 TV공부를 완전히 마치게 되는 박씨는 이제 TV수리에는 자신이 선다고 이렇게 땀 흘려 푼푼이 저축하고 배운 기술로 박씨는 이제 개미마을에서는 처음으로 독자적인 자립에 외문을 연 본보기가 됐다.
박씨가 개미마을에 입소한 것은 1977년 수입이 시원찮아 박씨가 허기진 배를 움켜쥐며 잠자리를 찾아 헤매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이 마을의 한 동료에 의해서 였다.
원래 박씨의 부친은 경찰경위로 6ㆍ25때 전사하고 모친은 9살 때 두 남매만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다. 3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 다리를 약간씩 저는 박씨는 그 뒤 여동생과 헤어져 원호대상자로 수원에 있는 경찰유가족보육원에 맡겨졌다.
그곳에서 중학교를 마친 박씨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1967년 대구에 오게 됐다며 고개를 떨구었다.
허니 이제는 남부럽지 않은 사회인으로 삶의 기반을 굳힌 박씨는 상점상호도 자신에게 안정을 찾아준 개미마을 동료들과 뜻을 함께 하고 가난한 이가 더욱 가난한 이를 돕는 「엠마우스」정신을 기리기 위해 「형제상회」로 정했다.
자신의 자립을 기점으로 삼아 『동료들과 보조를 맞추고 배운 기술도 가르치고 싶다』고 앞으로의 포부를 밝힌 박씨는 『동료들이 한 형제로서 돕고 떳떳한 직업을 가져서 나보다 더 잘 됐으면 좋겠다.』고 마을동료들을 걱정하기도 했다.
그리고 박씨는 자신에게 오늘이 있게 해준 개미마을 장사익 회장과 은인들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도 더욱 열심히 일하겠다고 굳은 결의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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