巨木은 너무나도 갑자기 하느님 품에 안겼다. 4반세기에 가까운 긴 세월을 오직 매스콤을 통한 복음전파로 몸바쳐온 김영호 신부-끈질긴 그의 집념의 결실이 너무나도 큰 것이기에 그를 마지막 보내는 신자들은 더한층 큰 설움에 흐느꼈다.
지난 27일 오후 4시30분 갑자기 선종한 김영호 신부의 영결미사가 봉헌된 30일 오전10시 대구대교구 주교좌 계산동성당에는 3천여명의 조객들이 참석, 고인의 업적을 추모하며 명복을 빌었다.
장병화, 이갑수 주교와 이동호 아빠스, 그리고 김수학 경북도지사를 비롯 많은 내외귀빈들이 참석한 가운데 서정길 대주교와 대구대교구 사제단이 공동 집전한 영결미사 중 강론을 통해 서대주교는 언론계와 교육계발전에 기여해온 김신부의 업적을 추모하고『특히 김신부의 남다른 순명정신은 후배사제들에게 좋은 모범이 되어왔다』고 술회、故人의 유덕을 기렸다.
오전 11시 미사 후 성당정원에서 참석자들의 흐느낌 속에 거행된 고별식에 이어 고인의 영구는 20여년간 키워온 매일신문사를 거쳐 주교관에 도착, 신자들의 기도 속에 안장됐다.
그런데 고인의 갑작스런 비보가 전해지자 각계에서는 심심한 조의를 보내왔고 주교관에 마련된 빈소는 朴正熙大統領을 비롯 김수환 추기경과 각계에서 보낸 조화로 덮였다.
1912년 6월 부산에서 출생한 김신부는 38년 6월 사제로 서품된 후 전북 익산군 화산리 본당 주임으로 성직에 첫발을 디딘 후 계명학교, 성지여중고 교장 등을 역임했고 57년 3월부터 지금까지 21년간 매일신문사장으로 재직해 왔으며 62년 5월부터 가톨릭시보사 사장으로 교회언론발전에 헌신해왔다.
「교회정신에 입각한 밝고 유익한 신문 제작」을 통해 사회에 교회정신을 심어 사회의 복음화를 이룩해야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
이 길을 위해 김신부는 숱한 어려움을 오직 인내와 노력으로 극복, 대구대교구에 한국교회로서는 유일하게 일간지와 주간지를 갖추도록 하는데 절대적인 공헌을 했다.
김신부는 한국 언론창달에 기여한 공로로 70년 대한민국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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