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행복하다고 말하면 남들이 웃을지 모르지만 정말 행복합니다. 나는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정상인도 다니기 어려운 대학을 맹인으로서 다녔고 만족한 결혼도 하였읍니다. 이제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에 보답하는 길만이 남아있을 뿐입니다』신앙을 통해 실명의 좌절을 극복하고 지난 2월 숭전대 법학과를 수석졸업, 대학원에 진학한 羅鍾千(레문도)씨의 신념은 조그만 어려움에서도 실의에 빠져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羅씨가 신앙에의 길에 들어선 것은 국립 서울맹아학교 중등부 2학년 때.
교양강좌 시간 중 개신교목사의 설교를 들은 후 신(神)을 찾아야겠다는 의식이 싹트면서부터였다. 설교내용 중 제자들이 맹인을 보고 예수님에게 『저 사람이 날 때부터 눈이 멀었으니 누구의 죄냐』고 묻자 『자기의 죄 탓도 아니고 그의 부모의 죄 탓도 아니다. 하느님의 영광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기 위한 것이다』라는 요한복음 9장의 말씀은 실명의 고통으로 「죽음」까지 의식하던 羅씨에게 새 삶의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목사의 설교를 듣고 羅씨가 찾은 곳은 개신교예배당이 아닌 서울 세종로성당이었다.
『학교 가까운 곳에 예배당이 많았으나 나도 모르게 성당을 찾게 되었읍니다. 정말로 모르는 일입니다. 아마 이것이 오늘의 내가 있도록 한 하느님의 섭리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신앙을 갖겠다는 의식이 싹트자 수많은 종파 가운데 정통파인 가톨릭을 찾겠다는 박연하기만 하던 의식이 성당을 찾게 한 듯합니다.』
정상인이면 15분 안에 충분히 갈 수 있는 성당이 30~40분이 걸렸다.
그러나 한번 불붙기 시작한 신앙은 틈나는 대로 평일 미사에까지 가도록 만들었다.
오직 『하느님 당신의 말씀이 참 됨을 알려주십시오.』라는 기도만 되풀이하였다.
1년 후 「레문도」라는 본명으로 영세한 羅씨는 고교에 진학하자 맹인신자 20여명을 규합하여 「인왕」셀을 조직하여 활동하는 등 신앙심을 키워왔다. 신앙을 통해 생활의 기쁨을 터득한 羅씨는 고교 2학년 때 사제에의 꿈을 키워왔다.
외국에서는 맹인사제가 피정지도학생회지도 등 특수사목활동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당시 학생회지도를 맡았던 오태순 신부(오류동본당)에게 조력을 구하였다.
그러나 「현실적인 어려움」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사제에 대한 미련은 한 학기동안 羅씨를 괴롭혔으나 나보다 못한 사람 나와 같은 불행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는 변호사가 될 것을 결심하고 법학과에 진학하였다.
대학진학 때 연세대, 서강대, 성균관대에서는 원서조차 받아주지 않아 시련을 극복해야만했다.
대학 3학년 때 자신이 조직하여 키워온 「인왕」셀 공개회합에서 羅씨는 아내인 李敬淑(데레사)씨를 만나 인생의 새로운 전환기를 맞았다. 춘천이 고향인 李씨는 춘천성수여중을 졸업, 서울 경기여고1년을 마친 후 가정형편으로 학교를 쉬어야만했다. 직장 때문에 학업을 중단한 李씨는 1년 후 다시 서울상업전수학교 야간부에 입학했다.
공부에는 자신이 있는 李씨는 77년 서울대학교에 장학생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역경을 이긴 맹인들의 기사를 잡지에서 보고 서울맹아학교에 찾아가 빨래와 청소를 해주는 등 평소 맹인들을 위해 봉사해온 李씨는 「이왕」셀 공개회합을 계기로 羅씨를 알게 되었다고 그에 합격하던 날 경복궁을 거닐면서 평생의 반려자가 될 것을 언약, 지난해 결혼하였다.
친정부모의 반대가 있었으나 李씨의 신념과 고집은 껶을 수 없었다. 애당초 반대하였던 친정부모는 이제 『사위 4명 중 羅씨가 제일 좋아』함께 살면서 이들 학사부부의 뒷바라지를 해주고 있다.
『나를 통해서 사람들이 맹인 전체를 볼 수 있고 맹인들도 사회의 훌륭한 역군이 될 수 있음』을 알리기 위해 자신을 소개하는 매스콤에 기꺼이 응하고 있다는 羅씨는 법학부 수석졸업과 사법시험 원서제출을 계기로 최근 일간지, 주간지, 텔레비전, 잡지 등에 대대적으로 소개되었다.
羅씨가 교회에 바라는 것은 맹인들을 위한 점자교리서와 성경책. 대한 성서공회에서 나온 성서를 읽고 있는 羅씨는 가톨릭에서는 그동안 독지가의 힘으로 자신과 동료들이 만든 점자교리서 몇 권이 있을 뿐이라면서 맹인들을 위한 점자교회서적의 출간을 간곡히 부탁하는 한편 지금도 맹아학교학생들이 점자공동체성가집을 만들기에 고심하고 있음을 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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