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전날에 성 라자로 마을에 진료가실 때 간호 보조원을 보내줄 수 있냐고 전화하실 때 카랑카랑하시던 그 목소리가 아직도 제 귓바퀴에 남아 맴돌고 있습니다. 설날 연휴가 시작되기 전날 아침에 목욕하시고 점심 자신 다음 그동안 나관리협회의「복지」에 연재하시고 있는 나사업 이야기의 원고를 쓰시던 중이었습니다. 갑작스런 심근경색이 발생하여 원고 쓰시던 그 자세 그대로 운명하셔서 모두들 학자로서는 가장 행복한 죽음이었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그동안 30년 넘게 해오시던 강원도 지역의 이동진료와 성 라자로 마을 진료, 그리고 스위니 신부님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일들, 선생님이 꼭 정리해야 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서 더욱 안타깝습니다.
1949년 서울 의대를 졸업하시고 국립소록도병원 의무관으로 나병 진료에 첫 발을 내디딘 이래 올해까지 49년, 반세기 동안 나환자 진료를 위하여 살아오신「일생일업, 일생일로」의 삶은 어떤 고매한 학식이나 사회적 성취나 명예보다도 우리 후배들에 깊은 감명을 주었습니다. 선생님의 빈소를 지키던 지난 5일간 문상 오신 분들을 보면서 선생님의 지난 시간들을 조금이나마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위로는 추기경님으로부터 밑으로는 한센병(나병) 병력자들까지 모든 분들이 선생님을 보내는 아쉬움에 슬퍼하고 계십니다. 평안도 대동군의 친구분들에서 시작하여 소록도에 같이 근무했던 분들, 소록도에서 시작하여 성 라자로 마을과 경기도 북부지역의 한센병 병력자들, 그리고 선생님과 같이 나사업에 참여했던 선생님들, 66년 이후 가톨릭의대 교수로 부임하시면서 퇴임하시고 명예교수로 재직하시던 기간 동안의 많은 분들이 선생님이 너무 일찍 가셨다고 안타까워하시고 계십니다.
며칠 전 명예교수회관에서 만나 같이 차를 나누었다는 명예교수님들의 말씀을 듣노라면 금새라도 별 일 없느냐고 전화하실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1965년 본 대학의 만성병연구소에 오시어 나병 진료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래로 선생님께서 지켜온 만성병연구소는 저희 후배들이 이어받아 국내 유일한 본격적인 나병 연구를 실시하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장례미사를 집전하신 주교님께서도 선생님 만큼 드러내지 않고, 나환자를 위해 사신 일생은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 천상에 오르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동안 선생님께서 이룩하신 나사업은 저희 후배들이 물려받아 더욱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선생님의 자제분 중에서 동환, 동수, 동휘, 동진은 각 과의 전문의와 사회의 중진으로서 선생님의 뜻을 이어가고 있으며, 사모님께서도 슬픔을 딛고 꿋꿋하게 살아가고 계십니다.
최시룡 선생님, 후배들은 일생을 시종여하게 살아오신 선생님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부디 주님 대전에서 평안한 안식을 누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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