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1962년 프랑스로 유학 간 박병도(베르나르도) 신부가 34년간 프랑스에서 살면서 듣고 얻고 배우면서 살아온 체험을 나누고자 보내온 글이다. 박병도 신부는 1967년 3월 사제품을 받은 후 84년부터 프랑스 니스교구의 성녀 말가리따본당에서 사목 중이다.
혼자 하는 사랑은 짝사랑이다. 사랑은 짝이 있어야 하고 짝이 맞아야 한다. 사랑을 고백하지 못하고 혼자서 앓는 사랑은 열매를 맺지 못한 마른 나무와도 같다. 메마른 나무에서 꽃이 필 수 없는 것도 흐르는 물이 없어 생명이 솟아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와 둘이 합치면 사랑의 꽃이 핀다. 하나+둘=사랑이다. 사랑을 셋으로 나눌 수 있게 된다는 것은 둘이 이룬 사랑의 열매를 셋 넷 모두랑 함께 누리자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내 삶의 인식이기도 하다. 나눔 속에서 사랑은 맘껏 생기를 피고 사랑의 가치를 지니게 된다.
사랑은 항상 삼각형의 구조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삼각형의 구조로 볼 때 세 요소는 서로 연관성을 지녀야 한다. 즉 너와 나 그리고 무엇. 너와 나 사이에 이뤄지는 사랑은 사랑 자체가 목적이 된다. 다시 말하면 열매를 나눠 갖는 것이다. 남녀간의 관계라면 사랑의 열매는 자녀들이다. 자녀들을 둘이 사랑하면 물처럼 흘러 넘치는 사랑을 셋 넷 모두랑 나눠 가질 수 있게 된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 형제에게 베풀어주는 자애로움은 하느님과 나 사이에 이뤄진 열매이기에 여기서도 삼각형이 이뤄진다. 형제 사랑으로 우리는 너와 나 사이에 또 다시 삼각형을 이룬다. 그래서 하느님은 우리 서로를 자신처럼 여기며 그이가 우리를 사랑하셨던 것 같은 똑같은 사랑을 나눠 보라는 것이다. 나눔 속에 삶이 연장되고 성장한다. 사랑의 근원이 성부 성자 성령 사이에 이뤄지는 연관성을 모델로 삼은 원리여서 더욱 그렇다.
「하나 둘 사랑 셋」속에 내포된 뜻을 내 나름대로 상상해 보면서 엄청나게 큰 일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하느님은 인간에게 선물하셨다는 것을 깊이 느껴본다.
사랑은 나눔이다. 자신의 것을 상대방에게 주면서 그의 것을 받는 것이다. 따라서 상대방을 사랑의 대상자로 삼으려면 자신과 같은 위치에 올라오게 해야 한다. 예수님은 인간을 당신 자신과 같은 위치에 이끌어 올려놓고 당신 아버지를 자신과 마음으로 「아버지」하고 부를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어 주신 것이다. 우리를 형제로 삼은 것이고,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 그럼으로써 하느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된다.
성삼의 깊은 내적 삶에 우리는 침잠해 갈 수 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가 된 것도 성삼의 공동작업이기 때문이다. 흘러 넘친 성삼의 사랑은 창조이고, 강생 구속이다. 십자가의 봉헌, 부활과 영원한 생명, 따지고 보면 이것도 성부 성자께서 고안하시고 이루신 것을 성화시키며 완성하시는 성령의 업적이다. 그렇기에 자리만 마련해 드리면 모든 성화의 작업은 성령께서 완성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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