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년(1801년) 9월에 들어 박해는 새로운 양상을 띄게 되었다. 서울에서는 홍필주 (필립보)의 순교로 두 번째 단계의 처형이 마무리되었지만, 아직 옥에는 여러 신자들 이 갇혀 있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전라도의 사도로 유명한 유항검(아우구스티노)과 그의 동료들은 9월 11일에 판결을 받고 6일 후에 전주로 이송되어 박해자의 칼날을 받았다. 그리고 이 무렵에 유명한 황사영(알렉산델)의「백서」가 발각되면서 이와 관련이 있는 교우들이 각처에서 체포되기에 이르렀으니, 그 안에는 황심(토마스)과 김한빈(베드로)도 포함되어 있었다.
황심 토마스는 일명 인철로도 불리었고, 자를 신거 또는 인보라 하였다. 충청도 덕산 지방의 용머리(지금의 삽교읍 용동리)에서 태어나 일찍이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으로부터 교리를 배워 입교한 그는 이웃에 살던 이보현 (프란치스코)에게 전교한 뒤 그의 누이와 혼인하였다. 그리고 몇 년 후에는 고향에서 자주 일어나는 박해를 피해 이보현과 함께 연산으로 이주하여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중 1794년 말에는 주문모 신부가 입국하게 되고, 이듬해 교회의 밀사 윤유일(바오로)과 지황(사바)이 순교하게 되자 교회에서는 다른 밀사를 물색하게 되었다. 이때 토마스는 이미 열심한 신앙생활로 이름이 나 있었으므로 교회 지도자들의 입에서 자연 그의 이름이 거론되었고, 즉시 밀사로 선발되었다.
사실 한겨울에 북풍이 거센 만주 벌판에서 노숙하며, 북경 3천 리 길을 오간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사 역할을 거절하기에는 토마스의 신심이 너무나 깊었고, 그의 용기는 교회의 부름에 응답하기에 아주 적당하였다. 이후 토마스는 1796년과 1797년, 1799년 세 차례에 걸쳐 북경을 왕래하면서 조선 포교지와 중국 교회를 잇는 가교자의 역할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1796년 겨울 동지사 일행의 마부로 들어가 처음 북경에 갔을 때는 구베아 주교를 만나고 이 신부에게 세례를 받는 영광을 누리기도 하였다. 그런 다음 그는 1800년 7월에 연산을 떠나 서울로 이주하였으며, 쌍림동에 거처하면서 황사영과 함께 교회 일을 도왔다.
김한빈 베드로는 충청도 보령 출신으로 천주교에 입교한 뒤 상경하여 정약종 (아우구스티노)의 집에 거처하면서 황상영, 홍교만(프란치스코 사베리오) 등과 함께 교회 일을 도왔다. 이러한 그를 교우들은「김포수」로 불렀는데, 그 이유는 포수업으로 생활을 도모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생활은 매우 어려웠지만 그는 언제나 기쁜 마음으로 생활하였고, 박해가 일어날 즈음에는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신유박해가 일어난 지 얼마 안 되어 베드로는 먼저 황사영과 함께 충청도 제천의 팔송정 즉 배론 옹기점에 있던 김귀동의 집으로 은거하였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토마스와 교회의 밀사 옥천희(요한)가 그들과 합류함으로써 이곳에는 새로운 비밀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이후 토마스와 베드로는 서울을 오가며 교회와 박해 소식을 황사영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자임하였다. 그러나 감시자들이 뒤쫓고 있는 한「백서」를 북경에 전달하려는 비밀스런 계획은 이루어질 수 없엇다. 그 책임을 맡은 옥천희가 8월 무렵에 북경에서 돌아오다가 봉황성 책문(柵門, 중국측 국경)에서 체포 되었고,그의 밀고로 9월 15일(양력 10월 22일)에는 황심(토마스)이 체포되었기 때문이다. 이어 9월 29일에는 배론에서 황사영과 베드로가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다.
박해자들은 그들 모두를 국사범으로 취급하여 모든 사실들을 모반죄에 얽으려 하였지만, 토마스와 베드로는 자신들이 천주교 신자이므로 신자로서 죽기를 원한다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대질 신문을 받으면서도 교회에 해가 되는 일은 절대로 발설하지 않았고, 영웅적인 힘으로 계속되는 형벌을 참아냈다. 그런 다음 10월 23일 (양력 11월 18일) 토마스는 육시로, 베드로는 참수로 순교하게 되었으니, 당시 토마스는 45세, 베드로는 38세였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