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휴, 나 유서 쓴 거 아닌데 누가 유언이라고 잘못 소개해서 사람들이 전화를 해대고 울고 한바탕 난리가 났었어요….”
그리곤 곧바로 책을 펼쳐들고 자랑 아닌 자랑을 늘어놓았다.
“편집 제작은 샘터사에서, 인쇄는 분도출판사에서 했는데 책 질감이 너무나 섬세하고 컬러도 완벽해 책을 보는 기쁨이 두 배가 됐어요”라며.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이해인 수녀/샘터/288쪽/1만2800원), 5년여 만에 펴낸 산문집을 읽어주는 이 수녀의 모습은 수도자로서도 작가로서도 아름다움의 정점에서 삶을 살고 있는 듯했다.
‘새롭게 피어나는 감사의 마음으로’ 생활

“매일의 생활에서 감사를 발견하는 것이 바로 인생의 보물이에요. 그 보물을 내 것으로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지요. 감사할 수 있으면 그것이 기도고, 기도할 수 있으면 그것이 바로 보물입니다.”
최근 이 수녀는 마음과 머리, 입에는 ‘보물’이라는 단어가 자주 머물렀다. 보물을 찾는 재미에 하루하루 사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 보물은 바로 부정적인 마음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일상의 그 어느 것 하나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감사의 마음을 고백합니다.”
작은 것 하나에도 감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더욱 감사하다. 덕분에 몸은 아파도 내면의 행복지수는 훨씬 높아졌다. ‘고통의 학교’에 잘 다니고 있다는 말도 웃음과 함께 자연스럽게 나온다.
이번 산문집에서도 꽃이 지고 나서야 비로소 잎이 보이듯이, 고통의 과정이 있었기에 보이는 일상의 소중함을 때론 섬세하게, 때론 명랑하게, 때론 그지없이 담담하게 풀어냈다.
총 6장으로 구성된 산문집은 이 수녀의 일기장과도 같다. 다양한 구성으로 꼭 순서대로 읽기보다 골라 읽는 재미도 맛보게 한다.
일상의 나날들, 우정 일기, 수도원 일기, 기도 일기, 성서묵상 일기, 추모 일기 등의 부제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수녀가 매일의 삶에서 길어 올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먼저 떠난 이들에 대한 그리움 담아
지난 한 해 동안 수도원의 일상을 적어 내려간 일기도 눈길을 끈다. 특히 6장 ‘그리움은 꽃이 되어 - 추모 일기’에서는 피천득 시인, 김수환 추기경, 김점선 화가, 장영희 교수, 법정 스님, 박완서 선생 등 우리 시대의 어른들과 이 수녀가 맺은 우정, 그리움, 애틋함이 아로새겨진 진솔한 글을 실었다. 사랑하는 이들이 줄지어 떠나자 이젠 자신의 차례라며 가졌던 조급한 마음도 내려놓고, 본질에 충실하자는 마음을 다잡는 가운데 써내려간 글이다.
수도원 일기는 여간해선 공개하지 않는 내용이기도 하다. 이 수녀를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하도 많이 들려 큰 맘 먹고 풀어낸 부분이다. 씨줄과 날줄을 엮듯 기도하는 시간을 바탕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하루, 여느 수도자의 삶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 수녀의 글이 대중들의 마음속을 파고들수록, 일부에선 ‘자기가 무슨 연예인인가, 팬 관리 하느라 서명만 예쁘게 한다, 인기 누리다 언제 수도생활을 하나’ 등등 염려를 가장한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이 수녀의 매일은 음악을 듣고 바닷가를 산책하고 꽃을 감상하고 우아하게 앉아서 시를 쓰는 낭만적인 일상이라고 오해하는 이들도 꽤 많았다. 이 수녀도 한땐 그런 말을 들으면 속이 상해 밤잠을 못 이루기도 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니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이더군요. 성인들은 일부러 모욕을 달라하고 순교도 청하셨는데, 이러한 기회가 주어져서 기쁘지요. 이래도 저래도 참 기쁘고 웃을 일이 많은 삶이에요. 큰 보물이죠.”
최근 일상은 수도생활의 진미를 더욱 깊이 맛보는 시간이다. 유명한 시인이 되고 싶어 수도원에 들어온 것이 아니었다. 다 포기하고 하느님만을 따르자 자연스럽게 따스한 시구들이 선물로 다가왔다.
“꽃이 필 때 꽃이 질 때 사실은 참 아픈 거래/ 나무가 꽃을 치우고 열매를 달아줄 때 사실은 참 아픈 거래/ … 우리 눈에 다 보이진 않지만/ 우리 귀에 다 들리진 않지만/ 이 세상엔 아픈 것들이 너무 많다고/ 아름답기 위해선 눈물이 필요하다고.”
인기그룹 ‘부활’의 김태원씨도 이 수녀의 시 ‘친구야 너는 아니’에 곡을 붙여 눈물과 아픔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데 한몫하고 있다.
“매일의 삶은 인내의 눈물이 있었기에 가능합니다. 누구나 마음의 전쟁을 치르며 살지요. 삶을 합리적으로 분석하려고 들지만 말고, 하느님께서 지금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한 번 더 생각해봐요. 평범한 일상을 비범한 사랑으로 채우는 시간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