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대사의 중요한 유물인 백제 칠지도는 일곱 개의 가지가 달린 독특한 칼이다. 백제에서 만들어 왜왕에게 보낸 것으로, 몸체에는 한자가 금상감으로 새겨져 있다. 그런데 칼을 일곱 개의 가지 형태로 만든 그 ‘7’이라는 숫자에 어떤 의미가 있어 보인다.
「일본서기」에는 칠지도 관련 기록이 있다. 백제 사신이 칠지도와 함께 일곱 개의 가지가 달린 거울인 칠자경을 함께 왜왕에게 바치면서, 칠일을 가야 하는 먼 곳의 철로 칼을 만들었다고 했다. 칠지도 이야기를 구성하는 텍스트에는 ‘7’이라는 숫자가 세 번이나 반복되고 있다.
‘7’이 세 번 반복되는 텍스트는 또 있다. 고구려 유리왕 이야기이다.
주몽은 부여에서 피신하면서 아내에게 당부한다. 아들이 장성하면 일곱 고개와 일곱 계곡을 지나 일곱 모가 난 돌 위의 소나무 아래 반쪽의 칼을 숨겨 놓았으니 찾아오라고 한다. 주몽의 아들 유리는 여기저기 헤매다 집의 일곱 모의 주춧돌 위에 소나무 기둥이 서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사이에서 칼을 찾는다. 세 번 반복되는 숫자 ‘7’의 비밀을 해독함으로써 결국 유리는 고구려왕에 오르게 된 것이다.
칠지도와 유리왕 이야기의 텍스트 구조에는 칼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과 세 번에 걸쳐 숫자 ‘7’이 반복되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중국을 비롯한 고대 동아시아에서는 우주세계가 세 개의 구조를 이루고, 그 중심에 북두칠성이 위치한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최고 권력자의 칼에 북두칠성을 새겼고, 그것은 최고의 무력을 상징했다.
‘7’은 그 북두칠성의 상징이다. 칠지도와 유리왕 이야기에도 이와 같은 상징이 숨어있는 것이다.
이러한 텍스트의 분석 틀을 성경에도 적용해 볼 수 있다.
요한 복음의 숫자적 상징은 정교하고 치밀하다. “이런 일이 있은 지 사흘 째 되던 날”,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예수께서는 최초의 기적을 보이신다. 그리고 죽음 후 사흘 째 되는 날 부활의 기적을 보이신 것이 상호 조응한다. 거기에는 숫자 ‘3’이 개재되어 있다. 예수께서는 성전을 쓸어버리면서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고 하셨다. 십자가에 못 박힐 때도 세 사람이었고, 그 광경을 바라보는 여인들도 세 사람이었으며, 십자가 명패에 써 붙인 글도 세 개 말로 적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세 번 말씀하셨다.
이런 숫자에 대해 성 베네딕도회 안셀름 그륀 신부는, 요한 복음이 당시 널리 퍼져 있던 숫자의 상징을 적절히 활용한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거기에 등장하는 ‘3’과 ‘7’이 거룩한 숫자라고 하였다. 예수를 증언하는 일곱 증인이 나타나며, 친히 당신 자신에 대해 일곱 번 말씀하신다. 부활 후 세 번째 나타나실 때 일곱 명의 제자와 아침식사를 함께하셨다. 그륀 신부는 ‘7’이 완전의 숫자로서 신적 생명을 통한 인간의 영광스러운 변화를 의미하고, ‘3’은 성삼위 하느님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요한 복음에는 이렇게 곳곳에 상징적 숫자를 배치하여 치밀한 구성을 이루고 있다.
거룩한 숫자 ‘3’의 내밀한 구성의 효과는, 요한 복음 결말부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세 번 물으신 데에서 극대화된다. 거기에는 베드로의 세 번에 걸친 배신이 강렬하게 오버랩되면서 스승과 제자 사이의 영적인 재회는 클라이맥스에 다다른다.
베드로는 두 번째까지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답한다. 그러나 예수께서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시는 바람에 베드로는 마음이 슬퍼졌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모든 일을 다 알고 계시니 제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모르실 리가 없습니다”라고 답한다. 요한 복음이 궁극적으로 우리 어리석은 인간들의 구원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베드로의 “슬퍼졌다”고 하는 표현은 인간이 회개와 깨달음을 통해 비로소 예수의 신성에 입문했음을 상징한다.
베드로의 세 번째 답변은 두 번째까지와는 달리, 주님을 사랑한다는 자신의 생각과 뜻 자체마저도 온전히 예수의 판단에 맡겨 놓음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예수께서 잡히기 전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시기를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이 사람들도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하셨다. 그 뜻이 부활 후 세 번의 질문을 통해 이루어지신 것이다.
요한 복음 전체에 내재된 거룩한 숫자의 치밀하고 정교한 구성을 통해 하느님과 인간의 참된 만남과 하나 됨이 극적으로 연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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