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신문사는 창간 60주년인 1987년과 창간 71주년인 1998년에 각각 「가톨릭신자의 종교의식과 신앙생활」에 관한 전국적인 의식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이 두 조사결과를 비교해 보면 신자들 사이의 공동체적 유대와 교회생활에 대한 참여도 두 영역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동료 신자들과 강한 공동체적 유대를 유지하면서 교회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신자층과 교회 공동체의 언저리에 머물면서 소극적으로만 참여하는 신자들의 양극화 현상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신자 10명중 4명 정도는 한번쯤 교회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이러한 잠재적 냉담자들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98년 교세 통계를 보면 전체 신자수는 3백80만4094명이며 그중 냉담자가 1백13만7428(주소확인자 49만5507명, 주소불명자 64만1921명)으로 전 신자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주일미사 참례자가 30.7%인 1백16만8447명임을 감안한다면 실질적인 냉담상태에 있는 신자들은 물경 60%에 이른다고 볼 수 있다.
신자들의 이러한 생활실태는 교회의 사명에 대한 새로운 각성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20세기 한국교회의 고뇌가 대외적인 복음선포(missio ad extra)였다면 21세기 한국교회는 이와함께 대내적 복음화(misso ad intra)가 새로운 화두로 첨가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세기를 반추하고 이 기억들을 새로운 시대를 위한 길잡이로 삼기 위한 각종 노력들이 시도되고 있는 요즘에 있어 냉담자 문제는 그 원인분석과 대책 수립에 있어 한국교회의 전반적인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질 수 있다.
예비신자 교리와 신자 재교육
허술한 신자선발과 허술한 교리교육으로 인해 초래된 신앙에 대한 무지와 회의는 냉담으로 이어지는 한 원인이 된다.
우선 예비신자 교리의 기간만 하더라도 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많은 본당에서 1년의 기간을 두었지만 예비신자가 늘어나면서 6개월 혹은 3개월로 단축됐다.
예비신자 교리교육 기간은 지식의 습득과 함께 신자가 되어 일평생 살아가야 할 신앙 삶을 배우는 시기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러한 경험을 갖지 못한 이들은 어려움이 올 때 쉽게 신앙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이 기간의 단축은 교리에 대한 무지를 불러와 각종 전례나 미사에 기계적으로 참여하게 되고 이러한 틀에 박힌 전례생활은 신앙생활의 무미건조화를 불러 냉담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또한 영세후에도 유악하고 여린 새 신자들이 여러가지 어려움에 부딪히면 냉담의 길을 걷기 십상이므로 신자들의 계속적인 영적 성장을 위해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신자재교육이 활성화 되어야 한다.
96년 대전교구 사목국에서 실시한 선교와 냉담에 관한 신자의식 실태조사를 보면 영세후 5년 이내로 냉담한 경우가 55%로 나타나 영세후에 즉시 사후 교육이 절실한 것으로 평가됐다.
공동체 의식의 약화
본당의 대형화는 「공동체에의 소속감 결여」라는 또 하나의 냉담요인을 안고 있다.
본당의 비대화는 교회의 내적 공동화(空洞化)를 초래해 사목자와의 인격적 만남이 부족하고 신자 상호간의 연대감이나 유대의식을 약화시켜 소외감을 느끼게 되고 이로 말미암아 참여의식을 상실하고 교회와 멀어지게 된다.
더욱이 이러한 소외감으로 인해 교회를 떠나는 이들이 대부분 도시화의 역기능으로 희생당하는 소회계층이라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냉담자들은 신앙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지 못한 이들이며 사랑에 굶주린 사람들이다. 따아서 교회는 경제적 약자나 성장기의 청소년, 유악한 노인들에게 관심을 베풀어야 한다.
냉담 관련 각종 설문조사에서 가장 많은 냉담자가 20-30대라는 사실은 중산층화, 여성화되고 있는 교회의 모습에 대한 인식의 반영이자 우리 교회의 미래를 불안케 하는 요소이다.
‘죄론’에서 ‘은총론’으로
대전교구의 조사에 따르면 신자생활을 하는 어려움 중 가장 큰 것으로 죄책감이 47.6%에 달했고 잠재적 냉담이유 즉 무슨 이유로 성당에 그만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지에 대한 물음에도 37.3%의 신자들이 죄책감을 꼽았다.
이러한 사실은 가톨릭 신자들의 윤리의식을 보여주는 것으로 교회 가르침의 주안점이 죄를 강조하며 무엇을 하면 안된다는 식이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보다 적극적으로 사랑을 베풀며 살아가는데서 신앙생활의 보람을 느끼게 하는 보력보다는 신자들이 악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데 또는 신자의 의무만을 강조하는 교회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으로 많은 신자들은 『대죄를 계속 지으면서 성당에 가끔 나가면 무슨 소용이냐』는 자문을 하게 되고 계속적으로 죄를 짓지 않을 자신이 없으면 성당에 나가는 것을 일단 중단하게 된다는 의미에서 냉담의 요소가 되고 있다.
지나친 죄책감은 하느님과 인간의 올바른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게 한다. 하느님은 심판관으로만 보이고 따라서 필요없는 부담과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앙생활을 중단하게 된다.
그러나 죄는 신학적 개념에서 볼 때 「사랑에 대한 무능력」이며 인생의 최후 행복은 인간의 실적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자유로이 선사하시는 은총이라는 점에서 신자들에게 죄에 대한 의식보다는 사랑의 실천이라는 점이 더욱 강조돼야 할 것이다.
가정과 혼인사목
냉담을 이야기하면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가정에서의 종교교육과 이와 연결되는 혼인사목의 문제이다.
98년 가톨릭신앙생활연구소의 통계로 본 냉담자 현황에 따르면 냉담자 중 가족 모두가 신자이거나 일부가 신자인 경우가 85.7%나 된다.
신자 상호간 친교강화로 가족 중 신자가 있으면 냉담의 경우가 적다는 일반적인 생각에도 불구하고 냉담의 비율이 높은 것은 가장을 비롯하여 온 가족이 냉담 중인 경우가 많은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다.
가장의 냉담은 가족 전체의 영향을 미치게 되고 가족 중의 냉담은 그 파급효과가 더 빠르다. 이와 같은 내용은 가정의 시작인 혼인에서 비롯된다. 다종교 사회인 한국에서 천주교는 아직도 소수이며 이러한 현실은 많은 숫자의 관면혼배로 이루어진다. 98년 관면혼율이 68.4%에 이르는 현실은 혼인사목의 중요성이 경시된다면 자칫 냉담가정을 양산할 우려가 있는 것이다.
가정 안에서의 기도와 교리교육의 부재는 신앙생활이 삶 속에 자리잡지 못하게 되고 냉담자 가운데 유아세례자의 비율이 30.1%(가톨릭신앙생활연구소)에 이른다는 심각한 결과를 낳고 있다.
결국 형식적인 혼인사목과 이어지는 가정의 신앙부실화는 그 태동에서부터 냉담의 요인을 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세속화와 권위주의
20세기말 한국 사회의 빠른 경제성장은 그 역기능의 대가로 건전한 가치관의 부재를 낳았다. 사회전체에 기회주의와 물질만능 사회풍조가 번져 나만 잘먹고 잘살면 된다는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이기주의가 각종 병리현상을 낳았다.
이러한 세속화의 경향은 교회안에도 빠르게 침투, 신중심적인 사고가 인간중심적인 사고로 전환됐다. 자본주의의 부상과 함께 금력이 인간적인 삶을 보장해주는 것으로 인식하게 된 것으로 청주교구의 최근 냉담자 실태조사와 98년 가톨릭신앙생활연구소의 조사에서 냉담의 이유가 「바빠서」가 압도적 이유로 꼽힌 것(청주교구 39.4%, 가톨릭신앙생활연구소 29.5%)은 이러한 세태를 아주 잘 반영해 주고 있다.
더욱이 많은 수의 냉담자들이 최근 5년 이내에 양산되었다는 조사보고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러한 세속화와 함께 냉담의 또하나의 원인은 구태의연한 권위주의에 대한 거부의식이다.
사회의 성장과 더불어 평신도들도 높은 교육을 받고 각자 전문적인 지식가 기능을 겸비하고 있으며 이런 평신도들이 사목과 성사생활과는 동떨어진 사목자들의 백화점식 독선과 아집은 인간적인 실망과 함께 냉담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증거적 삶과 적극적 복음선포
한국교회는 지난 20년간 놀라운 교세의 성장을 보여왔다. 80년대 이후 자발적으로 입교한 자들의 입교 동기는 교회가 대사회적이고 대정부 차원의 불의를 고발하고 민생의 평화와 안정을 실현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표명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교회가 앞장선 정치, 경제 사회의 왜곡된 현실을 바로 잡으려는 노력은 잠재적 예비 신자군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입교 동기가 순수한 신앙 차원과는 약간 다른 양상을 띄고 있으므로 교회의 정치참여나 사회참여가 과장됐다고 느끼고 실망하게 되면 그 과정과 배경을 불문하고 교회를 떠나려는 움직임들이 기존 신자들과 예비신자들 사이에 일어나기도 했다.
이 부분과 관련해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신자들이 증거적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는 냉담자들의 시각이다.
각종 설문조사에서 가장 효과적인 선교방법으로 지적되는 것 중 하나가 모범적 신앙실천이다. 신자들의 복음증거적 삶은 선교뿐만 아니라 냉담자 방지에 있어서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냉담예방과 회두
냉담자들은 성당에 다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가 하는 질문에 87%가 긍정적인 답변을 하고 있다. 이는 교회와 그 구성원들의 노력에 따라 냉담은 얼마든지 예방할 수 있고 돌아올 수 있다는 말과도 상통한다.
먼저 냉담자 문제는 예방의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따라서 교회내의 교역자들이 다양한 계층을 형성하고 있는 신도들을 분야별, 신분별, 연령별로 그들의 특성에 맞게 지도할 필요가 있다. 물론 사제의 부족 등으로 인한 현실적 어려움이 있지만 공동사목 등을 통해 신자들의 목마름을 채워 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냉담자 발생을 막기 위해서는 사귐과 섬김의 공동체로서의 교회 모습을 구성원 모두가 살아야 한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냉담자 증가를 막기 위한 대책으로 신자들의 친교강화와 신앙과 생활의 일치가 중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가장 높다.
또한 과거에 냉담했던 이들이 교회에 다시 돌아왔을 때 그들이 교회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어야 한다.
아울러 냉담자 회두를 위해서는 각종 프로그램이 개발되고 실시돼야 한다. 신자들과 냉담자들은 앞에 제시된 내용들 외에도 신앙상담, 구역·반모임 활성화 등의 대책들을 제시했고 그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어 일선 본당이나 교구 차원의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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