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보도에 따르면 우리나라 학생 중 정신 건강에 적신호를 보이는 아이들이 상당하다고 한다. 정부가 올해 전국 초?중?고교생 24만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12.8%가 정밀검진과 치료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울증과 주의력 결핍으로 당장 치료가 시급한 청소년이 전체 학생 750만 명 가운데 100만 명 가까이 된다는 것이다. 부모로부터 받는 과도한 학습 부담과 부모와의 대화 단절이 주요 원인이었다. 사교육 연령대가 낮아지면서 정밀검진이 필요한 학생의 비율은 고교생보다 중학생이 더 높아지고 있다.
아이들은 부모님이 자꾸 화만 낼 뿐 얘기가 잘 안 통한다고 하소연한다. 아이들은 고민을 얘기할 사람이 없어서 답답한 마음을 해소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은 분노나 충동조절이 되지 않아서 갑자기 교실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하는 등의 과잉행동장애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지난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초?중?고교생이 2백 명을 넘어섰으며 청소년 자살 시도의 1/3이 충동적으로 일어나는 만큼 자녀의 정신건강 유지를 위한 부모의 세심한 관심이 필요한 실정이다.
청소년 우울증의 시작이나 증상은 특별하지 않다. 어느 날부터인가 아이가 짜증을 많이 내고 신경질을 자주 부리며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면 자녀를 혼내거나 야단치기에 앞서 주의를 기울이고 자녀에게 관심을 갖고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 부모가 충고하고 설득하려고 하기보다는 자녀가 심리적으로 어떤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지 충분히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자녀의 입장에서 마음을 공감하며 비판적인 태도를 내려놓으면 소통이 가능해진다. 공감과 이해가 빠진 대화는 부모 잔소리의 연장에 지나지 않는다.
아이와 소통이 좋아지려면 아이의 말을 들을 때 신부님이 고해성사를 듣듯 비판없이 듣는 것이 중요하다. 설령 살인자가 자신의 죄를 고백할지라도 신부님은 비난하지 않고 들어주고 보속을 주신다. 우리는 성사를 통해 마음을 털어놓고 나면 얼마나 마음이 편해지는가? 하느님은 잃어버렸던 한 마리 양이 되돌아왔을 때 그 양을 응징하거나 처벌하기보다는 안아주고 용서하신다. 아이의 꼭꼭 닫아버린 마음을 열 수 있으려면 신부님이 고백성사를 듣는 마음으로, 잃었던 양을 용서하고 품어주는 하느님의 마음으로 아이의 말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란다. 자녀가 괜한 짜증이나 불만을 호소하면 정신적으로 힘들다는 것을 인식하고 비판 없이 아이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자. 부모의 공감이 자녀에게는 최고의 마음치유제가 될 수 있다.
공교육과 사교육에 시달리는 아이들은 쉴 틈 없이 학교와 학원에 다니며 초등학교 때부터 경쟁관계에 노출된다. 학생시절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힘든 것이다. 게다가 대학을 졸업해도 88만원 세대니, 청년실업이니 해서 미래가 밝지 않다.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건 못 하는 학생이건, 당장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이건 모범생이건 간에 부모는 아이들이 힘들다는 것을 공감해야 한다. “조금만 참으면 돼”, “최선을 다해라”보다는 “공부하느라 힘들지? 고생이 정말 많구나”처럼 위로와 격려의 말이 아이들에게 더 도움이 된다.
아이들은 희망이 없고(hopeless), 도움 받을 수 없으면(helpless) 위기를 겪는다. 꿈이 없고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것은 곧 미래와 희망이 없다는 뜻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해줘야 하는 것은 바로 도와주고 지지해주고 격려해주는 것이다. 뭘 힘들어하는지 잘 들어주고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주어야 한다.
가출 충동이 강한 아이를 상담한 적이 있었다. 놀랍게도 부모는 아이의 상태를 전혀 모르고 있다가 눈물을 흘릴 만큼 당황했다. 아이가 부모를 의논상대로 여기지 않았고 부모는 아이에게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결과다. 부모가 자녀의 상태를 이해하고 서로 포옹하고 울며 대화를 나눈 후 아이의 가출 욕구는 사라지게 되었고 학교생활도 잘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은 힘들더라도 부모님이 나를 옆에서 도와주고 지켜줄 수 있다는 마음만으로도 스트레스를 극복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자녀에게 공감하고 있다는 믿음을 주면 자신을 믿어주는 부모에게서 자신감을 얻는다.
부모가 자식에 대해 기대를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부모의 욕구만을 앞세우게 되면 자녀는 심한 압박감과 불안을 느끼게 될 것이다. 자녀에게 기대가 높아지고 욕심이 올라올 때, 부모 마음에 드는 아이가 아니라 ‘하느님 보시기에 사랑스러운 아이’로 자라게 해 달라고 기도 할 수 있는 부모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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