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에르 떼이야르 드 샤르댕(Pierre Teilhard de Chardin) 신부(1881~1955·예수회)는 한국 신자들에겐 낯선 이름이지만 20세기 가톨릭교회는 그를 가장 독창적 신학자요 철학자 중 한 명으로 꼽는다.
그의 저작이 워낙 방대하고 이해하기 어려워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샤르댕 신부는 1923년 중국 베이징에서 인류 화석 ‘베이징 원인(原人)’을 발굴하는 등 고고인류학 분야에서도 획기적인 발자취를 남겼다.
무엇보다도 샤르댕 신부는 과학적 진화론을 신학에 도입한 예언자적 신학자로 유명하다. 그는 당시 높은 울타리를 치고 서로 별개로 치부하던 ‘과학’과 ‘신앙’에 하나의 연결고리를 제공하며 과학과 종교가 융화되는 독창적 그리스도론을 제시했다.
샤르댕 신부의 저작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Le Milieu Divin」이 최근 「신의 영역」(분도출판사/176쪽/8500원)이란 제목을 달고 한국어판으로 발간됐다. 전 대구대교구장 이문희 대주교가 우리말로 옮겼다.
책은 ‘능동성의 신화’, ‘수동성의 신화’, ‘신의 영역’ 등 크게 세 부분으로 이뤄졌다. ‘행동의 성화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문제’와 ‘인간적 노력의 그리스도교적 완성’을 다뤘고, ‘신의 영역의 속성과 본성’, ‘그리스도와의 위대한 통교’를 고찰했다.
사제이자 과학자였던 샤르댕 신부는 이 책을 통해 신과 인간, 우주에 대해 조명한다. 그러나 수덕신학(修德神學)의 체계를 따르거나 형이상학 및 호교론에 그치지는 않는다. 자연과 초자연 혹은 신의 영향과 인간의 활동을 명백히 구분하지 않고, 죄와 은총에 관한 노골적인 언급도 드물다. 다만 실제적이고 구체적이면서도 초자연화된 인간에 주목할 뿐이다.
그는 “신의 사랑으로 우리도 신 안에 들어가고, 그의 사랑으로 일체를 이룰 때 우리는 없어진다. 그러나 그때 우리는 참으로 신의 영역에 몰입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즉 ‘신의 영역’은 ‘신이 있는 곳이고, 그곳에 우리가 있을 때’란 것이다. 결국 샤르댕 신부에게 있어 과학적 탐구는 우주의 창조자인 하느님에 대한 탐구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결부돼 유기적인 관계를 맺게 된다.
샤르댕 신부가 추구하는 세계를 공유하지 않는 한 그의 사상을 따라잡기는 상당히 어렵다. 그럼에도 그가 제시한 신비적 직관과 탁월한 예지가 시대를 넘어 새롭게 평가받는 것은 오늘날까지도 논란이 되는 과학과 신앙의 조화에 하나의 모범을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그의 사상은 과학에 대한 회의와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 살아가는 21세기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빛을 비춰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문희 대주교는 발문에서 “신의 영역은 하느님의 나라이고 하느님과 함께 사는 사람만이 거기에 있을 수 있다”며 “하느님과의 이 통교는 이미 이 세상에서 육화의 연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체를 통해 우리 각 개인에게 주어져 있다”고 전했다.
※문의 02-2266-3605(서울), 054-970-2400(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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