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노가 가족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내민 것은 그때였다. 카미노에서 ‘너는 너’, ‘나는 나’는 없었다. 길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순례길에서 바친 매일미사도 특별한 은총으로 다가왔다. 가족은 매일미사를 드리며 기쁨과 감사가 함께하는 신비를 경험했다. 가족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하나가 됐다. 더 겸손하고 성숙된 마음으로 서로에게 다가섰다. 갈등과 아픔을 카미노에서 겪을 수 있는 것도 은총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씨는 10여 년 전 책과 다큐멘터리를 통해 산티아고를 간접적으로 접했다. 그러다 남편이 갑자기 직장을 잃게 되자 대녀와 딸을 동행한 ‘가족 순례’라는 거창한 계획을 세우게 됐다. 틈만 나면 모의 배낭을 꾸려 한강 고수부지로 나가 걷기 연습을 했다. 모든 것이 완벽했고 세상은 카미노를 위해 움직이는 듯 했다. 그렇게 떠난 길이었다.
순례길은 순탄치 않았다. 불볕더위를 참아내야 했고, 하루에도 우의를 몇 번씩 갈아입어야 했다. 배낭에 넣은 짐이 어깨를 짓눌러 왔다. 막판엔 물집이 벗겨지는 고통도 감내해야 했다. 가족 간에 불협화음이 일자 순례길의 고통은 배가 됐다. 넷이 하나가 되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이씨는 “내 영혼 모두를 카미노에 일치시켜 매순간 기도하고, 미사와 영성체를 간절하게 소망하며 발걸음마다 사제의 강복에 의지한 순례였다”며 “주님 안에서 순례하며 간절하게 청하고 모든 것을 의탁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책 말미 에필로그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카미노는 목적지를 향해 가는 삶의 여정이자 그 의미를 배우는 학교였다. 거부할 수 없고 피해갈 수 없는 고통이 아니라면 배울 수 없는 것들을 카미노에서 배웠다. 그것은 사랑이고 내어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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