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유다교 유산
오순절은 빠스카 이후 50일째에 지켜진 축제로써 맥추절이나 칠칠절로도 불리우며 밀의 수확을 감사드리는 축제였다. 후대에 이르러 이 날을 시나이 산에서 십계명이 주어진 날로 재해서가여 율법에 대해 감사하는 날이 되었다. 그리하여 선민들은 빠스카가 국민의 탄생이었다면 오순절은 그들 종교의 찬생으로 여길 정도로 성대하게 지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오순절을 지내면서 영성적으로 다시 시나이 산으로 돌아가 그때 하느님으로부터 율법을 선물로 받으면서 맺었던 계약을 새로운 신심과 사랑 안에서 갱신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찬미와 노래를 부르며 하느님께 감사드렸고 건민으로서의 긍지를 느꼈다. 『의인들아, 야훼께 감사하며 기뻐 뛰어라. 수금 타며 야훼께 감사하고 새로운 노래로 찬미하고 흥겨운 가락에 맞춰 우렁차게 불러라. 야훼께서 당신 겨레로 뽑으시고 몸소 그들의 하느님이 되어주신 민족은 복되리니』(시편 33장)
초막절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든 생업에서 손을 떼고 칠일간 야훼께 제물을 살라 바쳐야 했고 팔일 째에도 거룩한 모임을 열고 야훼께 제물을 바친 축제였다.(레위 23,33~38), 원래 이 축제는 올리브, 포도, 무화과 등을 거두어들여 하느님께 바치는 감사제와 동시에 신년제도 겸한 농경시대의 행사였는데, 후에 선민들이 경험한 광야의 고초와 유랑의 천막생활을 기념하기 위하여 영성적으로 재해석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민족들과 세상으로부터 성별되고 따로 떼어져 오직 신앙 안에서 분리된 민족임을 스스로 자각하게 하는 축제가 되었다. 그리하여 이 축제는 그들에게 스스로 쇄신되려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매년 며칠간 사막에서 지내면서 『우리는 천막을 치고 사는 유목민이며, 이 세상에는 머물 성읍이 없어 언젠가는 오게 될 성읍을 기다리는 순례자와 나그네에 불과합니다』라고 말하였던 것이다.
옛날에 생겨나서 성도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라고 불리워진 이 삼대 축제 외에도 보완적인 여러 가지 축제들이 생겨났다. 이 축제들 역시 선민들에게 많은 영적인 교훈을 주었다.
속죄의 날은 전 국민의 죄를 보속하는 대제일(大祭日)로써 1년에 한 번 거행되었다. 이 축제가 레위기에서 정한 여러 의식 중 중요한 것임은 이스라엘 온 회중의 모든 죄가 속죄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매년 7월 10일. 모두 일을 쉬면서 단식하고 대사제는 자기와 그 가족과 전 민족의 죄를 씻기 위한 속죄의 의식을 거행하였다(레위 23,26~32). 이리하여 하느님과 백성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졌다. 단식은 그들에게 뉘우침의 정신을 심어 주었다. 그러므로 이 날은 즐거운 날(초막절)이라기보다는 슬픔의 날이었다. 제물은 드리는 이의 신분에 따라 희생동물을 달리했다. 대사제는 숫송아지, 온회중도 숫송아지, 족장은 숫염소, 일반인은 암염소나 어린 암양이었다. 이런 동물을 바칠 수 없는 가난한 자들은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 극빈자는 고운 가루 얼마를 바치도록 되어 있었다.
성전봉헌축제(제단봉헌축제)는 율법에 충실했던 마카베오의 주도하에 일명 하스모네 기문에 속하던 제사장 마띠디아와 그의 5명의 아들이 봉기하여 기원전 164년 12월 성전을 정화하고 다시 제사를 드린 것을 디념하여 유다교에서는 유대력으로 기슬레브 달 25일부터 8일 동안 이 축제를 지낸다. 하늘에 계시는 하느님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언제나 이 땅에 머무시기를 원하시며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으시나 언제나 당신의 백성과 더불어 계신다는 확신을 심어 주었다.
6) 거룩하신 하느님
계약에 의해 알게된 하느님의 속성 중에 유다이즘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하느님의 거룩하심이다. 예언자 이사야의 표현대로 하느님은 거룩하신 분이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야훼, 그분의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하도다』(이사 6,3).
거룩함이란 너무나 좋고 엄숙하며 성스러워 보통의 것과 특별히 다른 것으로서 일상의 것과는 분리, 차단되고 존엄하여 초월적이다. 그러므로 드높고 감히 가까이 할 수 없으며 신비스러운 어떤 것이다. 하느님은 거룩하시다. 유한하고 약하며 죄로 오염된 인간과는 함께 할 수 없는 순수하며 신비스러운 신성(神性) 그 자체이시다. 하느님께 가까이 하면 죽음을 면치 못하였다. 왜냐하면 그분은 무한하시고 영원하시며 인간의 범주를 완전히 초월하시는 분이기 때문이었다.
이사야는 하느님의 거룩하심을 어느 누구보다도 잘 표현하였다. 즉 지고(至高)의 위대함이요, 도덕적이면서 동시에 물리적이요, 비할 바 없이 고양된 것으로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인간뿐 아니라 생물과 무생물을 포함한 온갖 만물을 초월한 것이요, 그러면서도 전적인 신뢰와 절대적인 복종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위대함이다. 그것은 아모스가 공포한 불변적 정의의 고귀함인 동시에 호세아가 약속한 무한한 자비의 고귀함이다. 이 둘은 실제로 친숙하게 인격적이면서도 전체 백성에게도 공통적인 그분을 만난 체험에서 하나가 된다. 선민들은 자기들의 조상처럼 살아 계신 분을 뵙고 난 후에도 그들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에 놀라 즉시 그분 면전에서 땅에 엎드려 뵙게 될 분을 믿은 것이다. 모세처럼 그분을 만난 사람도 이제는 죽지 않앗다. 그러므로 이사야에게 일어난 것처럼(이사 6,5~7) 제단에서 날아온 불타는 석탄이 더러운 입술을 정화시켰으므로 그들은 세라핌 천사처럼 다음과 같이 노래 부를 수 있었다. 『거룩하시도다, 그 이름 거룩하시도다. 그리고 거룩하신 분들이 쉼없이 찬미하나니, 주님은 하느님이시오 왕이시며 위대하시고 거룩하십니다. 찬미받으소서, 오주님, 하느님, 임금님, 거룩한 분이여!』이 찬가는 에스레에 나오는 기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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