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는 듯하다.
올해 초 일본 아사히신문은 한일병합 100년을 맞아 장문의 사설을 실었다. 사설은 안중근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의 ‘동양평화론’에 담긴 내용으로 바람직한 미래의 한일관계를 제시했다. 안중근이 순국한지 10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미래적 가치로서의 그가 지닌 생명력을 실감케 한다.
많은 사람들은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독립투사라는 사실에 방점을 두어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천주교 신앙을 빼고서는, 안중근이라는 한 역사적 인간을 온전히 이해하기가 절대 불가하다는 사실을 간과해 왔다. 안중근의 신념은 철저히 신앙에 근거하고 있었다. 거사 전에 성공을 천주께 기도했고, 거사 후 성공을 확인하고 성호를 그으며 천주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그런 점에서 안중근의 거사는 일련의 신앙행위였다고 할 수 있다. 2000만 동포의 고통의 십자가를 안중근이 대신한 것이다.
사형선고를 받은 안중근은 결국 더 이상의 항소를 포기하고 죽음을 선택했다. 하지만 한 인간으로서 만감이 교차하였을 것이다. 어머니 조 마리아는 사형선고를 받은 안중근에게 두 동생을 보내 말을 전한다.
“너의 거사는 2000만 동포의 공분(公憤)을 대신한 것이니, 구차하게 항소하지 말고 순국하라.”
사형 당할 운명에 처한 자식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웠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감내하며 순국하라고 말하는 어머니의 담대함이 감동적이다. 당시 이를 지켜본 감옥의 일본인 관리들도 흐르는 눈물을 몰래 닦았다고 한다. 천주신앙이 대단했던 어머니 조 마리아의 이 대목에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바라보며 고통스러워한 성모 마리아를 떠올리게 한다.
안중근은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신부님 두 분 그리고 어머니와 아내에게 옥중유서를 보낸다. 4통의 유서는 모두 예수를 찬미하는 말로 시작되는 눈물겨운 신앙고백이다. 다음의 ‘분도 어머니(아내)에게 부치는 글’에 보이는 바와 같이 철저히 자신을 비우고 천주께 순명하는 모습을 보인다.
“예수를 찬미하오. 우리들은 이 이슬과도 같은 허무한 세상에서 천주의 안배로 배필이 되고, 다시 주님의 명으로 이제 헤어지게 되었으나, 또 머지않아 주님의 은혜로 천당 영복의 땅에서 영원에 모이려 하오.”
이 글에 이어서, 유서의 마지막 부분에는 장남 분도(베네딕토)를 천주께 바쳐 신부가 되게 하라는 당부로 끝을 맺는다.
안중근은 독립운동 중에 일본군을 피해 산속으로 수십일간 도망 다니면서 굶어죽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에도 일행 동지 두 사람에게 대세를 주며 천국의 신앙을 전교하였다. 또한 그는 자신의 사형 집행일을 예수 수난일에 맞춰 달라고 했을 정도로 예수의 삶을 닮아 일치시키고자 했다. 이러한 신앙심이 사형선고 이후 안중근을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게 했다고 할 수 있다. 가해자인 일제를 용서하고, 그와 화해하며 진정한 평화와 공존번영을 주창한 것이다. 그가 저술한 ‘동양평화론’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 20세기 100년의 동아시아는 어떤 시대였을까?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한마디로 말해서 제국주의와 민족주의의 대립이었다고 규정할 수 있다. 그 제국주의의 상징적 존재가 이토 히로부미이었기에, 그를 극적인 일격에 쓰러트린 안중근은 20세기 민족주의의 상징으로 부각되었다. 그런 점에서 20세기 최고의 아이콘은 역시 안중근이다.
그러나 안중근을 조국 독립이라는 가치에 국한시킨다면, 그가 지니는 생명력은 20세기에 한정될 것이다. 조국을 침탈하고 자신을 사형에 처하려는 일본을 용서하고, 동아시아의 미래를 화해와 평화 그리고 공존번영을 주창한 안중근은 분명 독립투쟁이란 차원에서 새로운 단계로 나아간 것이다. 그의 담대한 용기와 한없는 용서는 온전히 그의 신앙심의 발로였다. 한 인간이 이룩한 숭고한 인격이 신앙심이었고, 안중근의 그 참된 신앙이 20세기의 역사가 된 것이다.
이제 우리는 한 세기를 마감하고 시대가 바뀌어 새로운 21세기를 살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안중근의 가치와 의미, 생명력은 여전할 것인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 욕망, 이익, 갈등, 대립이 극대화 되어가는 오늘날, 지금까지 소홀히 해왔던 안중근의 신앙을 더욱 부각시키고 이해를 넓혀나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이번호부터 이내옥(안토니오)국립 대구박물관장, 서상진 수원교구 서호본당 주임신부(수원대 교수), 김철홍(베드로)우만종합사회복지관장, 송지희(헬레나)큐이티부모학교위원께서 집필해주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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