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책을 낼 수 있어 기쁘다. 내 자식들과 손자들에게도 뽐내고 싶다. 쓰는 일은 어려울 때마다 엄습하는 자폐의 유혹으로부터 나를 구하고,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지속시켜줬다’ (‘책머리’ 중)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큰 작가, 소설가 박완서(정혜 엘리사벳·80)씨가 새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현대문학/268쪽/1만2000원)를 냈다. 지난 2007년 펴낸 산문집 「호미」 이후 3년 동안 문학잡지와 일간지 등에 틈틈이 발표해 온 글을 묶었다.
박씨는 올해 팔순이자 등단 40주년을 동시에 맞았다. 어느덧 원로작가의 일군에 편입됐지만 시간이 흘러도 사람과 자연, 세상에 대한 그의 시선은 여전히 따뜻하기만 하다.
표제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는 경기도 구리시 아차산 아래 전원주택에서 잔디와 화초를 가꾸며 건져 올린 상념들을 담았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마당에 나가 오전 내내 흙일에 매달리고, 글을 쓰다가도 수시로 마당에 나가 다시 손에 흙을 묻히는 노(老)작가의 일상이 포근하게 다가온다.
그간 수많은 작품의 화두로 던졌어도 팔십 평생에 아직도 풀지 못한 ‘6·25전쟁’의 회한은 그에게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1·4후퇴 당시 다리에 관통상을 입은 오빠를 손수레에 태우고 여섯 식구가 사력을 다해 무악재를 넘다가 오도 가도 못하고 공산군 치하의 서울에서 겨울을 났던 바로 그 전쟁이다.
올해가 전쟁 발발 60주년을 맞기 때문일까. 그는 “6·25 경험이 없었으면 내가 소설가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나도 느끼고 남들도 그렇게 알아줄 정도로 나는 전쟁경험을 줄기차게 울궈먹었다”며 “6·25가 난 해도 경인년이었으니 꽃다운 20세에 6·25전쟁을 겪고 어렵게 살아남아 그해가 회갑을 맞는 것까지 봤으니 내 나이가 새삼 징그럽다”고 토로했다.
박씨는 자신이 40세 늦깎이 나이에 작가의 길로 들어선 것도 전쟁으로 말미암은 상처 때문이었음을 조심스레 고백한다. 그러나 그가 겪은 전쟁과 분단에 대한 아픔이 독자들을 치유하고 위로해온 글샘의 원천이 됐음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산문집 말미에는 김수환 추기경, 소설가 박경리·이청준 선생, 박수근 화백 등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에 대한 추모글도 함께 실렸다.
박씨는 ‘영원한 현역’이란 별명답게 또다시 내일을 향한 발걸음을 힘차게 내딛는다. 앞으로 몇 년이나 더 글을 쓸 수 있을지 알 수는 없으나 그가 내린 작가로서의 새 다짐은 ‘남의 책에 밑줄을 절대로 치지 않는 버릇부터 고치는 것’이다. 그는 “기력이 있을 때까지는 계속 글을 쓸 것”이라며 “나이가 들면서 예전처럼 빨리 쓰지는 않지만 좋은 문장을 남기고 싶어서 공들여 쓴다. 지금도 머릿속으로 작품 생각을 하면 뿌듯하고 기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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