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교구 정은규(로마 한인신학원장) 몬시뇰의 모친이자 가톨릭신문 초대 편집인을 맡았던 최정복(요셉)씨의 여동생 최재경(발바라) 여사가 4월 17일 88세의 일기로 선종했다.
4월 21일 오전 11시 미리내 103위 기념성전에서 봉헌된 장례미사는 대구대교구장 이문희 대주교 주례, CCK 사무총장 김종수 신부 등 10여명의 사제단 공동집전으로 거행됐다.
미사와 고별식 등으로 조촐하게 이어진 이날 장례미사에는 고인의 장남인 정은규 몬시뇰과 시동생인 미리내 천주성삼성직수도회 총장 정행만 신부를 비롯 대구대교구 박창수 신부, 박병원 신부, CCK 사무차장 성완해 신부, 정병조 신부, 미리내 천주성삼성직수도회 소속신부 등 성직자와 유가족, 수도자 등 100여명이 참석, 고인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했다.
이날 장례미사 강론에서 김종수 신부는 『고인은 항상 자녀들에게 오직 세상에서 잃어버리지 말고 살아 갈 것은 「주님」이라고 강조하며 신앙을 통해 자녀들과 이웃에게 참모범을 보여 주셨다』고 말했다.
1912년 대구에서 출생한 고 최재경 여사는 경북여고(당시 대구 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20세 되던 해인 1931년 정행돈(미카엘, 생존) 옹과 결혼, 슬하에 정은규 몬시뇰 등 3남 4녀를 두고 있다. 특히 고인은 남편 정행돈 옹이 일제시대 때 항일운동에 참가, 옥고를 치루는 동안 옥바라지와 자녀양육 등 온갖 고생을 다한 것으로 유명하다.
고인의 남편 정행돈씨는 일제시대인 1938년도에 농촌계몽운동, 독서회를 통한 청년동지회 결성, 한글강습회 등을 주관, 구속된 바 있으며 해방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훈한 국가유공자다. 아울러 그는 왜관 순심중고등학교를 설립, 분도 수도원으로 넘길 때까지 교육사업에도 헌신해 왔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울러 고 최재경 여사는 가톨릭 신문 초대 편집인을 맡았던 최정복씨의 여동생. 고 최정복씨는 1924년 남방천주공교청년회를 조직한 바 있으며 1927년 4월 1일, 가톨릭신문의 전신인 「천주교회보」를 창간, 한국 천주교 최초의 매체선교의 장을 연 선각자였다. 한편 가톨릭신문사 사장 최홍길 신부는 21일 거행된 고 최재경 여사의 장례미사에 조화를 보내 고인의 유덕을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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