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부터 약 3년간 나는 기억조차 하기 싫은 사업실패에서 오는 엄청난 고통과 함께 신앙의 위기를 맞았다. 이 신앙의 위기는 갑자기 닥친 것은 아니고 미숙하고 잘못된 신앙생활에서 배양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기쁨에 넘쳤던 영세 초기가 지나가 서서히 굴곡이 심한 신앙생활로 들어갔다. 어느 때는 목이 메이도록 감격하다가도 때로는 미사에 안갈 궁리를 했고 더러는 죄짓고 성사를 보지만 다시 되풀이하곤 했다.
「구하라, 받을 것이다」라는 말씀을 믿고 재물을 첫째 자리에 놓고 기도하지만 감사할 줄 몰랐다. 어느 날 밤엔가 우리 가족 모두가 연탄가스 중독으로 잠자듯 나란히 죽어 가고 있을 때 주님은 기묘한 방법으로 긴급히 구해 주셨지만 나는 감사하지 않는 배은망덕한 자였다.
뿐만 아니라 중년이 되면서부터는 성서말씀보다 6·25의 상처로 남은 가난을 벗는데 관심을 더 쏟으며 당시 한창이던 부동산 경기를 타고 돈을 벌면 그때 가서 신앙생활을 잘하면 된다는 식이었다.
이처럼 내가 신앙의 위기로 치닫고 있을 때 구원의 손길이 있었다. 그것은 인간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말이다. 「요나」에게는 큰 물고기 뱃속에서 3일간의 고통일 필요했지만 내게는 3년간의 고통이 필요했나 보다.
당시의 단말마의 고통은 한마디로 표현하면, 제멋대로 비틀어진 쇳덩이가 연장이 되기 위해서 대장간의 불 속에서 달구어져 망치로 쉴 새 없이 얻어 맞으니 비명을 지르며「구세주가 이럴 수 있나」하며 끝내 예수 성심상을 박살내고 만 모습이었다.
그러나 고통의 날이 거듭되자 나는 스스로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답답한 심정을 나눌 사람이 그리워졌고, 잠 못 이루는 한밤이면 심야방송에서 목사의 설교를 들으며 요즘 IMF 실직자들처럼 실의에 빠진 나는 큰 위로를 받았다.
한때는 절망의 고통 때문에 차라리 죽기를 바랬다. 그런데 죽음을 각오하니 「죽는 날까지는 산다」라는 생각으로 마음은 오히려 편해지면서 죽는 날도 정해 두셨을 하느님께 마음이 쏠려 차츰 주모경을 바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기도서의 모든 기도문을 매일 열심히 바쳤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온갖 고생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러면 모든 것도 곁들여 받을 것이다』하신 말씀을 희미하게나마 알아듣게 되었으니, 나는 「들을 귀 가진 자」가 아닌 참으로 어리석은 자였다.
1972년 11월 말경 가족에게 말했다. 『나는 더 이상 살아갈 힘이 없다. 살리시든지 죽이시든지 하느님께 온전히 맡긴다. 그러니 모두 성사를 보자』하고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에 고해성사를 보았다. 그리고 관심없던 견진성사도 받았다.
그해 사순절. 십자가의 길 기도 때는 특히 12처에서 「혹시 주님을 떠날 불행이 온다면 지금 주님과 함께 죽게 하소서」라는 대목에서 기도서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껴 울었다.
이처럼 묵은 나는 죽고 차츰 어두운 옛 생활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의 피로 정화되고 하느님 백성의 겨자씨로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레지오 마리애 단원을 모집하라』는 새로운 소명을 받고 다시 시작하는 신앙생활에 도움이 필요해서 나는 성모님께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생전의 어머니를 조르듯 무엇이든지 청하고 감사하는 편지를 통해 성모님은 나를 양육하셨고 보살펴 주셨다.
그러기에 지금은 이 신앙의 위기를 나의 출애굽으로 보며 또한 하느님 두려움을 알게 하신 은총의 시기로 본다.
하느님은 참으로 오묘하시다. 세상것만 추구할 때는 빈털터리가 되더니 주님께 온전히 매달릴 때는 잃었던 것 이상으로 채워 주셨다. 언젠가 기도 중에 『네가 잃은 게 무엇이냐?』라고 물으셨다. 『주님, 없습니다. 주님이 아니시면 벌써 알거지가 됐을 몸입니다』라는 대답밖에 할 말이 없었다.
지금은 그리스도 신비체의 한 작은 지체로서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하신 성모님의 분부 받고 뛰어 다니는 「가나」혼인잔칫집 하인들처럼 살아가고 있다.
[창간 72주년 특별기획-신앙과 위기 나는 이렇게 극복했다] (4) 정운식
1970년 사업실패로 엄청난 고통과 함께 신앙 위기를 맞았다. 「구세주가 이럴 수가 있나」하며 예수 성심상을 박살내고 만 모습이었다. 차라리 죽기를 바랬다. 그러나 「죽는 날까지 산다」고 생각하니 마음은 오히려 편안해졌다. 묵은 나는 죽고 어두운 생활에서 벗어나 하느님 백성의 겨자씨로 자라나기 시작했다.
발행일1999-05-02 [제2149호, 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