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실한 가톨릭 신자 중국인 부부에 의해 한때 임시정부 요인들이 보호되고 오랫동안 임정 청사가 관리돼왔던 사실이 밝혀져 관심을 끌고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고수희·유용생씨 부부가 그 주인공.
1932년 4월 29일 상해(上海) 홍구공원(虹口公園)에서 윤봉길 의사가 의거를 일으키자 일본은 프랑스 조계지(組界地·경찰 및 행정 자치 구역)에까지 들어와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때 고수희씨는 조계지 경찰서의 변호사 신분을 이용해 수색활동을 지연시켰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친분을 맺고 있던 임정 요인들에게 수색사실을 신속히 알려 피신하게 도왔다.
또한 유용생씨는 그동안 돈독한 우의를 나누고 있던 임시정부 재무총장 이시영(후에 초대 부통령 역임) 선생과 국무원 회계검사원 김철 선생에게 은 400원을 도피자금으로 제공했다.
이때 임정 요인들도 청사가 있던 「보경리 4호」를 고수희·유용생씨 부부에게 위탁하면서 보호관리를 부탁하게 됐다. 그러자 유용생씨는 주소지를 「보경리 4호」로 옮기면서까지 임정 청사가 다른 사람들에게 넘어가지 않고록 보호에 힘썼다. 후에는 당시 중국 국민은행장이었던 외조부 일가를 「보경리 4호」로 이사해 살게 했으며, 1938년 후에는 유씨의 친척 언니를 비롯한 일가친척들이 계속해서 「보경리 4호」로 이사해 살게 했다.
이렇게 맺어진 임시정부 청사와 중국인 고수희·유용생씨 부부 집안과의 인연은 92년 한중 국교가 수립될 때까지 이어졌으며 아직도 청사 주변의 건물들은 고씨 후손들의 소유로 되러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같은 사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80주년을 맞아 4월 13일 임시정부 청사에서 열린 기념식에 참석한 이원순(에우세비오)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에 의해 밝혀졌다.
이원순 위원장은 기념식에서 고수희씨의 아들 고방제(顧方濟·프란치스코 사베리오)씨의 연설을 들으면서 비록 중국인이지만 가톨릭 신자에 의해 임정 요인이 보호되고 청사가 지쳐졌다는 사실에 귀기울이게 됐다고 밝혔다.
고방제씨는 현재 중국 화동여산신학원(華東余山神學院) 교사로 우리 나라에서는 신학교 교수에 해당한다. 고씨는 본당 총회장을 맡고 있을 정도로 교회일에 열심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고방제씨에 의하면 선친 고수희씨는 남다른 신심의 소유자로 교황청 훈장까지 받은 인물로 알려지고 있다.
고방제씨는 연설을 통해 선친 고수희씨가 1922년 프랑스 파리정치대학을 1등으로 졸업하고 박사학위까지 받았다고 밝혔다. 귀국 후에는 진단대학 법률학과 교수를 역임하면서 프랑스 조계(組界) 순포방(조예지에 있던 경찰서) 변호사를 겸임하고 있었다. 당시 순포방의 유명한 4대 변호사중 한사람이어서 임정 요인들을 도울 수 있는 배경이 되었던 것 같다.
1924년 유용생씨와 결혼하고 보경리 부근 신민촌 2호와 3호에 살고 있던 고씨 부부는 당시 신민촌 1호와 5호에 살고 있던 이시영·김철 선생과 자연스럽게 우호적인 왕래를 가졌다. 당시 한국과 중국은 모두 일본 군국주의의 침략을 받고 있던 터라 민족의 어려움을 함께 겪고 있던 고씨 부부와 이시영·김철 선생 등은 긴밀한 관계를 통해 서로 힘이 되었던 것으로 달려진다. 이들의 소개로 고씨 부부는 김구·이동녕 선생과도 알게 되었다고.
이 과정에서 고방제씨의 모친 유용생씨는 해산이 가까워지자 주변에 유명한 의사들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철 선생의 부인을 청해 한국의 전통적인 조산 방법으로 고씨의 둘째형과 누이의 출산을 돕게 했다. 따라서 유용생씨와 김철 선생의 부인은 수개월간 함께 생활하면서 친자매와도 같은 정을 나누게 됐다.
1975년 선종한 고수희씨는 생전에 한국 친구들을 다시 보길 소망했다. 한국 친구들의 애국정신을 늘 칭찬했고, 부부가 함께 수십년 동안 한국 친구들을 생각하며 고생이 끝나길 기도했다.
마침내 1989년 2월 이시영 선생의 손자 이병선씨가 상해로 와 유용생씨를 찾았다. 이씨는 이시영 선생이 후손들에게 중국 친구들을 절대로 잊지 말라고 부탁했다는 말을 전했지만 당시 유씨는 병중이어서 만날 수 가 없었다. 이병선씨는 4월에 다시 찾았고 두 사람은 감격스러운 만남을 가졌다. 이병선씨가 은 400원에 대해 감사를 표하면서 그에 상당하는 돈을 갚으려고 했지만 유용생씨는 『우리들과 한국친구 사이에 우정만 있을 뿐이지 채무진 은 없다』고 말했다.
같은 해 6월에는 김구 선생의 손자 김신씨가 유씨를 찾아왔지만 병세가 심해 만날 수 없었다. 유씨는 이 일을 두고 선종할 때까지 안타까워 한 것으로 보아 얼마나 옛 한국친구들의 후손들을 보고 싶어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유씨는 유언마저 「자신과 맺은 한국 친구들과의 우의를 반드시 계속 유지하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고방제씨는 연설 말미에 최근 한국의 많은 친구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 김철 선생의 후손을 만나지 못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살아있는 동안 모친이 남기신 소원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한국 친구들의 도움으로 김철 선생의 후손을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이순원 위원장은 『임시정부와 가톨릭 교회가 무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 상황에서 비록 중국인 신자 부부이지만 긴밀한 관계를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이 무척 반갑다』고 말하고 『조만간 고방제씨가 방한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중국교회를 돕고 북방선교를 준비하고 있는 한국교회에서도 환영할 일이다』라고 밝혔다.
한편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80주년 기념식은 상해 복단(復旦)대학 한국학연구중심이 주최하고 한국 보훈처와 한국재단이 후원했다. 기념식과 함께 기념국제학술 연토회(硏討會)도 열린 이번 행사에는 이순원 위원장과 김준엽 전 고대 총장 등 학계 인사와 광복회원 등이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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