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전 남편과 사별한 후 아들 삼형제를 혼자 키우며 오늘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신앙의 힘이었다. 사랑하는 남편을 떠나보낸 바로 그해 이웃에 사는 착한 자매님의 사랑실천 모습에 이끌려 천주교 세례를 받았다. 세례를 받았지만 어린 아들들과 살아갈 길이 막연하고 너무 힘들 때가 많아 하느님을 원망할 때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 삼형제는 하느님 뜻에 순종하며 착하게 잘 자라주었다. 큰 아들과 둘째 아들이 새벽미사 복사를 서고 주일학교 교사로서 열심히 활동하는 것이 감사했다.
나는 오직 자식들을 위해 현실적인 문제만을 해결하는데 급급했다.
그러던 어느날 큰 아들로부터 교구신부도 아닌 수도회 사제가 되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너무 섭섭하고 배반감 마저 들었다. 큰 아들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남들처럼 대학 졸업 후 결혼해서 평범한 가정을 일궈 대종손 가장으로서 살아줄 것만을 바랐기 때문이었다.
하느님을 원망하는 등 남편을 잃었을 때 보다 더 큰 고비였다. 날마다 성당 감실 앞에서 『하느님, 남편없이 자식만 믿고 의지해온 저에게서 하필이면 왜 제 큰 아들을 부르십니까』하며 떼를 썼다. 제편을 들어주실 것 같았던 본당신부님도 제 말을 다듣고 인간의 가치에 대한 말씀과 함께 마음의 문을 열라고 하셨다.
아무튼 성소를 허락받은 큰 아들의 밝은 표정을 보면서 저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됐고 매일 새벽미사에 참여하고 성서를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세속 친구들과는 멀어지고 하느님과의 관계만 깊어졌다. 큰 아들은 엄마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성소의 길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위해 입대했다. 그 당시 막내 아들과 큰 아들은 먼저 군대생활을 학고 있었고 둘째 아들하고만 살게됐다.
곁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둘째응 위한 기도를 할 줄 몰랐다. 멀리 있는 아들들만을 위해 기도하면서 세월이 흘러 큰 아들이 사제품을 받는 기쁨을 느끼며 살고 있을 때였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둘째 아들의 오토바이 사고 소식을 접했다.
병원으로 달려가는 택시안에서 하느님께 매달렸다. 『과부의 아들을 측은히 여기시어 살려주셨다』는 성경구절이 떠올라 위로받았다. 의사선생님은 머리와 얼굴을 너무 많이 다쳐 살아난다해도 두 눈을 실명할 것 같다고 했다. 왜 이런 가혹한 형벌을 주실까 하느님 원망만 터져나왔다. 하필이면 가해자 없는 사고라 보상받을 수 없었고 아들을 살려낼 수 없다는 절망감이 엄습했다.
매달릴 데는 하느님 뿐이라 또다시 가까운 성당의 성체조배실을 찾아가 무조건 아들의 생명을 보호해 주십사 간절히 기도했다. 기도 덕분인지 생명에는 지장없다는 의사 말을 듣고 즉각 감사기도를 드렸다. 여러 차례 대수술을 받았던 병원생활 9개월동안 많은 변화와 하느님 체험을 하며 주위 신자분들의 열심한 기도와 사랑나눔 덕을 톡톡히 보았다.
그후 둘째는 비록 한쪽 눈을 잃었지만 다니던 직장에 다시 건강하게 잘 다니고 있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한가지 하느님께 소망이 있다면 우리 둘째가 짝을 얻게 해달라는 것이다. 착하고 신앙심 깊은 규수면 더 좋겠다고 기도하고 있다. 큰 아들은 수도원에 입회하여 수사신분으로 신학대학을 다니고 있으며 막내 아들은 컴퓨터 정보기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을 열심히 다니고 있다.
매일 미사에 참례하고 복음말씀을 쓰고 묵상하면서 성삼위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 감사의 기도를 바치고 있다.
[창간 72주년 특별기획-신앙과 위기 나는 이렇게 극복했다] (3) 정월남
남편과 사별 수 25년간 아들 3형제 키워오던 중 종손인 큰 아들이 수도회 입회하길 원했고, 둘째 아들의 교통사고로 인한 한쪽 눈 실명 등 절망감만이 밀려와
지금은 많은 변화와 하느님의 도우심을 체험하며 이웃들의 기도·사랑 나눔 듬뿍 받아
발행일1999-04-25 [제2148호, 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