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년(戊寅年) 새해를 여는 첫 순간이 지난 1일 0시, 국내 바둑계에선 최초로 가톨릭 신부와 스님이 신년맞이 친선 대국을 가져 화제에 올랐다.
노래하는 스님으로 널리 알려진 조계종 도신 스님과 「반상(盤上)의 만남」을 이룬 화제의 주인공은 마산교구의 이재열 신부(45ㆍ수산본당 주임). 이날 대국은 케이블 바둑TV가 IMF 한파를 극복하고 희망차고 밝은 한 해를 꾸려가자는 취지로 마련한 신년 특별 대국.
이재열 신부와 도신 스님의 기력은 아마 5단. 두 성직자의 승부는 이재열 신부의 불계승으로 끝났다. 이재열 신부가 『이겨서 미안하다』고 말을 건네자 도신 스님은 『대단한 실력이었다』고 화답해 스튜디오에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됐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재열 신부 바둑알을 처음 쥔 것은 중 2년때. 올해로 바둑 경력 만32년째다. 당시 부친의 가게 종업원들이 심심풀이로 두는 바둑을 어깨너머로 보며 자랐다.
『바둑이 무어길래 사람들을 저렇게 빠져들게 만드는가』궁금하기도 했지만 『무척 재미있어 보였다』는 게 이신부의 고백이다.
금세 바둑 삼매경에 빠져들기 시작한 이신부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제대로 한번 배워볼 양으로 기원을 찾았다. 이신부의 실력은 이때부터 일취월장. 고3때인 지난 70년 그의 기력은 1급 수준에 도달했다.
서강대 재학시절 서강기우회에서 활동했고, 대학 2년 때 전국 대학생 바둑대회에 주장으로 출전하기도 했다.
서강대 수학과를 졸업한 이신부는 지난 84년 대구가톨릭대학에 입학, 90년에 사제품을 받았다. 신학교 시절과 첫 보좌신부 시절은 이재열 신부 유일하게 바둑을 가까이 할 수 없었던 때였다.
『늦은 나이에 신학교에 입학한 저로선 신부가 되겠다는 일념에 바둑을 생각할 여유가 많지 않았지요. 서품후 보좌시절엔 아무래도 바쁘게 살다보니 바둑 둘 기회가 적었지요』.
이신부는 요즘 틈나는 대로 PC 하이텔 바둑대국실에 들어가 수담을 즐긴다. 상수 하수들과 대국을 벌이기도 하고 다른 이들의 대국을 관전하며 연구도 한다.
이재열 신부 말하는 바둑예찬론. 『바둑도 마약과 같은 거라고 봐요. 우선 바둑은 재미있습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지요. 바둑판과 알만 구하면 돈들 일도 없어요. 또 바둑을 두면 친구를 쉽게 사귈 수 있습니다. 이 세계에서는 바둑 친구만큼 좋은 친구가 없다는 말이 있어요. 그만큼 바둑으로 사귄 친구는 진실되다는 얘기지요.』
이신부의 바둑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친교와 화합에 바둑이 상당한 효과가 있다는 점을 이용해 이신부는 본당사목에도 이를 적극 활용할 생각이다.
수산본당에 부임해 오면서「어린이 바둑교실」을 한번 시도해봤지만 워낙 교세가 작은 곳이라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큰 본당에서는 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우선 어린이와 주부들을 대상으로 바둑교실을 열어 성당을 자주 찾게 만드는 겁니다. 또 남자 어른들은 바둑동호인회를 결성해 함께 취미를 즐기면서 화합도 다지고 공동체 활성화도 도모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간의 경험으로 바둑을 통해서라면 충분히 해볼만 하다고 이신부는 확신한다.
『인천 주안3동본당의 「천석회」라든가 수원교구 사제들의 바둑 동호인회인 「산돌회」의 경우를 보더라도 바둑이 친교와 화합에 크게 보탬이 된다는 것이 입증된다』는 이신부는 교회 안에서 이런 시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인다.
『특히 요즘 같은 소위 IMF 시대에 적은 비용으로 여가를 보낼 수 있는 최고의 취미생활이라면 단연 바둑이 으뜸이지요』.
PC앞에 앉아 대국실에 들어가는 이신부의 얼굴엔 또 다른 「반상의 만남」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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