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물건을 적재하거나 옮기는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운반수단인 지게차. 그러나 이 지게차를 유심히 샅펴보면 지게차에 탑재된 캐빈(cabin, 운전실 덮개)의 대부분이 (주)국일캐빈(대표=여은석ㆍ49ㆍ요셉, 수원교구 분당요한본당)에서 제작한 제품임을 발견하게 된다.
국내 캐빈시장에서 국일캐빈이 차지하는 시장 점유율이 약 60%에 달하기 때문에 지게차에 탑재된 캐빈의 10대 중 6대는 국일이 제작 판매한 셈이 된다.
그만큼 지게차 캐빈시장에서는 국일캐빈이 국내시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탄탄한 아성을 구축하고 있다. IMF시대를 맞아 모든 기업이 어렵다고 아우성을 칠 때도 국일은 미동도 없다. 한우물만 파 왔던 여은석 사장의 옹고집이 이처럼 국내 지게차 캐빈 시장을 석권토록 이끌었던 비결로 나타나고 있다.
『회사가 잘되고 부동산 투자가 호황을 누릴 때 많은 친구들이 부동산 투자를 권유했지만 한눈 팔지 않고 회사를 운영해 왔던 것이 오늘의 국일을 낳게 한 것 같습니다』
10여 년 전 금호타이어 영업과장으로 있으면서 지게차공장에 부품을 공급했던 것이 인연이돼 88년에 캐빈공장을 차렸던 여은석 사장. 그는 모든 지게차는 출고될 당시 캐빈을 탑재하지 않은 채 출고하기 때문에 운전기사들이 겨울철에는 눈보라를 맞아가며 운전하느라 여간 고생하지 않는다는데 착안, 사업을 시작했다.
현재 국일캐빈은 현대와 대우에서 생산하는 지게차의 경우 거의 독점하다시피 캐빈작업을 맡고 있고 삼성중공업에서 생산되는 지게차도 상당수 제작, 납품하고 있다.
영업사원을 단 한명도 두지 않아도 국일캐빈만의 독특한 제품제작과 철저한 시공으로 작업물량은 계속 늘어가고 있고 매출액은 매년 두 배씩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여은석 사장의 자랑이다.
물론 서울 신길동에서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는 10여 평의 공간에서 눈보라를 맞아가며 캐빈을 제작할 정도로 어렵게 회사를 운영해 온 적도 있다.
부인 서윤숙(마리아)씨는 척추디스크 장애로 하반신이 마비돼 몇 년째 병원신세를 져야 했기 때문에 여은석 사장은 매일 몇 차례씩 병원과 현장을 뛰어다니며 집안일과 병간호, 회사일을 번갈아 가며 해야 했던 적도 있었다. 「집에 가서 장례치를 준비를 하라」는 의사의 진단까지 받기도 했지만 신앙으로 그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었다는 여은석 사장.
옹기를 구워 팔며 신앙을 지켜온 순교자의 후손으로 돈독한 신앙을 지켜오고 있던 여은석 사장은 꾸르실료를 수료하면서 신앙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뜨게 됐다고 설명한다.
무일푼으로 사업을 시작, 이만큼 기업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의 은총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했다고 믿고 있는 여은석 사장은 최근 그 은총에 보답할 수 있는 길로 신자들을 위한 피정집 겸 연수원을 짓기로 결정,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회사가 위치한 바로 뒤쪽인 경기도 광주군 오포면의 퉁점골 공소 부근에 약 5백 평 정도 사용할 수 있는 땅을 이미 구입하고 잔금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여은석 사장은 개인적으로나마 교우촌인 이 일대를 지켜 내겠다는 생각이며 이를 통해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을 이사회에 또 교회에 되돌려 놓을 작정이다.
특히 여은석 사장은 가톨릭실업인회의 결의에 따라 조선족동포 10여 명을 데려와 일자리를 제공해주고 기숙사 제공과 함께 국내 근로자들과 똑같은 임금을 주고 있기도 하다.
최고로 튼튼하고, 사용하는 기사가 편리하고, 정비가 편하도록 재품을 만든다는 3대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여은석 사장은 앞으로도 오직 한길, 지게차 캐빈분야에서 만큼은 국내에서 일등이 되겠다는 국일(國一)의 각오를 다지고 있다.
[새해 특별기획 시리즈 “함께 하면 따뜻합니다” - 신자 기업인을 찾아서] (3) 지게차 「캐빈」전문-「국일 캐빈」 여은석사장
“한업종 한 우물”…탄탄한 기반 다져
영업사원 단 한명도 없어
독특한 제작ㆍ철저한 시공
국내 시장 60% 점유
순교자 후손으로 신앙 돈독
광주군 퉁점골 공소 부근에 피정 겸 연수원 건립에 심혈
발행일1998-01-25 [제2087호, 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