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삶이 다른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기꺼이 보여 드리겠습니다』
자신을 내보인다는 게 결코 쉽지 않은 전과 4범, 그렇지만 자신의 그런 과거가 드러나는 것을 개의치 않고 남에게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는가를 먼저 묻는 한안토니오씨(서울 도봉동본당).
충북 진천의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나 유아세례를 받은 한안토니오씨는 초등학교 3학년 때 가족 전체가 서울로 이사를 오면서 자신의 음악적 소질을 발견하게 된다.
큰누나가 가정부로 일하던 집에 놀러 갔다 피아노를 처음 본 한씨는 그때부터 음악적 열정에 사로잡히게 됐다. 다음날부터 새벽에 학교에 가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풍금을 치거나 새벽미사 전에 성당에 나가 오르간을 쳐댔다.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선화예고 음악과에 입학한 것은 어쩌면 그의 당연한 선택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학교 매점에서 일하며 공납금이라도 면제받으며 학교에 적을 둘 수 있었던 게 다행이었다. 1학년을 반이나 넘어섰을 때 처음 레슨을 받았으나 레슨비를 못내 방황하다 택한 3일간의 무단결석, 그날 이후 한씨의 삶은 나락으로 치달았다. 무기정학과 자퇴로 이어진 그의 삶은 그나마 음악이 있었기에 지탱할 수 있었다.
음악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 피아노나 전자오르간이 있는 술집을 전전하며 웨이터를 하던 한씨는 자신도 모르게 전자오르간을 들고 술집을 뛰쳐나오고 말았다. 이것이 그의 첫 전과기록이다. 훔친 물건을 돌려주고 자수하기를 네 차례, 음악에 대한 열정에 겨워 어느 새 기록한 그의 전과다.
당시 그는 감옥에 있을 때가 오히려 마음 편했다고 한다. 매일 일요일마다 있는 미사때 신나게 오르간을 쳐댈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씨가 네 번째로 감옥생활을 한곳이 원주교도소. 그에게 이곳은 광야였다. 회개와 보속의 삶을 결심하게 된 것이다. 그의 이런 변화는 당시 원주교도소로 봉사활동을 나오던 김금숙(아녜스ㆍ철산본당)씨의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씨가 이모로 따르고 있는 김씨는 한씨의 음악적 재능을 높이 사 출소한 이후 줄곧 그의 후견인 노릇을 해왔다.
한씨는 출소 후 김금숙씨를 도와 자신이 갇혀 있었던 원주교도소의 음악봉사자로 새롭게 태어났다. 그는 매달 셋째 주 화요일 모든 일을 제쳐 두고 원주를 찾는다. 이미 그의 분신이 된 30~40kg이 넘는 전자오르간은 항상 그를 따라 다닌다.
한씨와 김금숙씨의 노력이 처음 빛을 본 것이 95년, 「신상옥과 형제들」의 제3집 「눈물보다 웃음이」취입 때 게스트로 초청받았던 것이다.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은 한씨는 그 이후「신상옥과 형제들」의 레코드 취입 때마다 함께 해오고 있다.
『출소한 형제들이 스스로 올바르게 서는 것이 보속』이라는 한씨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던 출소자들을 돕는 일에도 적극적이다. 출소자들에게 가정을 되찾아 주고 이들이 서로 도우며 살아갈 수 있도록 「작은 손 모임」을 만들기로 했다.
한안토니오씨는 곧 33년간의 자신의 삶을 담은 독집앨범 「참 좋으신 주님」을 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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