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예수의 꽃동네 형제회에서 종신서원을 한 정광열(바르톨로메오) 신부가 금년 1월 중순 꽃동네 가족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걸인체험」을 한 것이 뒤늦게 밝혀져 화제가 되고 있다. 그래서 음성 꽃동네를 찾아가 정광열 신부의 걸인 현장체험을 들어보았다.
1월 엄동 새벽, 맨 땅에서 잠을 청했다. 생전 처음 느껴 본 「뼛속까지」 스미는 추위… 입은 옷 만으로 맨 땅에 누워 잠을 청할 만큼 솔직히 용기도… 만용도 없었다.
『저는 신부가 된 다음에 예수의 꽃동네 형제회에 입회했습니다. 보좌 신부로 본당 사목도 해보았지요. 저하고 같은 날 사제품을 받은 동기 신부들은 벌써 교구 안에서 주임신부가 된지 오랩니다. 저는 신학생 때부터 꽃동네를 좋아했습니다. 방학 때면 꽃동네를 찾아 그때마다 꽃동네 가족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일하며 살았습니다. 막힌 하수도를 치기도 하고 장대비가 퍼붓는 날 무덤도 팠습니다. 배우는 게 많았습니다. 아마 사랑이었나 봅니다. 그래서 신부가 된 후 꽃동네 가족들과 평생 함께 살고 싶어 입회하게 됐습니다』
정광열 신부는 1월 13-16일 3박 4일 일정으로 칫솔 하나만 주머니에 넣고 걸인 체험을 위해 서울로 상경했다. 밤 11시경 청량리역에 도착한 정신부는 걸인들을 찾기 위해 우선 역 대합실로 들어갔다.
하지만 눈에 띄는 걸인은 자신뿐이었다. 『IMF가 걸인도 정리해고 시켰나』 생각하며 역광장을 어슬렁거리다 두 명의 걸인을 발견하게 됐다. 반가워서 달려갔더니 그중 한 명은 종신서원 동기 수사였다. 주머니들을 털어서 술도 사오고 뜨끈뜨끈한 생선묵과 김밥을 사왔다. 한 순배씩 돌아 어느새 4명이 더 몰려와 모두 6명의 무리가 됐고 세상 넋두리를 하다가 동기 수사의 말실수로 신부임이 들통 나고 말았다. 그러자 6명 중 4명이 가톨릭 신자임을 밝히고 그중 2명은 고해성사를 보고 싶다 해서 고해성사를 주었다.
새벽 2시경 걸인들의 안내로 윤락녀들이 사는 골목을 지나 철도청이 사용하지 않는 창고로 들어가 잠자리를 마련했다. 『조금은 겁이 났습니다. 창고에 들어가니 이미 2명이 누워 있더라고요. 창고 안에는 손바닥만 한 휴지 조각 하나 없었어요. 제겐 1월 엄동의 새벽, 입은 옷만으로 맨 땅에 누워 잠을 청할 만큼 용기도 만용도 솔직히 없었습니다』
정신부는 다시 밖으로 나와 종이 상자를 주워 다가 걸인들과 함께 창고 안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정신부는 뼛속까지 스미는 추위를 처음으로 느꼈다고 한다. 이러 저리 뒤척여도 덤벼드는 냉기를 참을 수 없어 새벽 4시경 창고를 나왔다.
둘째 날은 서울역, 셋째 날은 영등포역에서 걸인들과 함께 지낸 정광열 신부. 정신부는 이번 체험에서 『걸인들의 세계에도 함께 나누고 질서를 지키면서 테두리 없는 공동체를 이루고 있음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정신부는 걸인들의 이러한 모습들이 지난 날 자신이 가지고 있던 그들에 대한 사고방식을 새롭게 해 주었다고 강조했다.
『새벽부터 거지들이 식당 문을 연다』며 매몰차게 내치는 식당 아주머니에게 사정사정해 식당 밖에서 밥을 사먹으면서 나흘을 보낸 정광열 신부는 이번 체험이 꽃동네 가족들과 평생을 살아갈 신부로서 자신의 좌표를 다시 한 번 깊이 성찰하는 좋은 계기가 됐다고 고백했다.
정신부는 『나흘간의 체험이었지만 걸인들의 세계를 보면서 그들이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이상의 힘든 삶을 인생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어떤 이는 그것을 자유로 느끼며 살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며 『이 기간 동안 꽃동네 수도자들이 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걸인체험 현장에서 건강이 악화된 몇 명의 걸인을 가평 꽃동네 병원으로 모셔야만 했다는 정신부는 걸인들을 위한 야간 이동 의료 서비스를 마련해 봄직하다는 제안을 하며 『3박 4일 동안 3시간 정도밖에 잠자지 못했지만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 상쾌했다』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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