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고속성장기 지나 성장의 정체기에 수반되는 갖가지 후유증 속출
※ 조사실시기관 : 우리신학연구소
※ 자문 : 고려대학교 노길명ㆍ조광 교수
【총론 : 조사의 배경과 조사결과의 전반적 특징】
가톨릭신문사는 지난해 창간 7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가톨릭신자의 종교의식과 신앙생활」을 주제로 조사연구를 실시했다. 1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올해 초 진행된 이번 조사연구는 현재 한국가톨릭교회의 현주소를 정확히 파악, 미래교회를 준비하기 위한 적극적인 선택으로 시도되었다.
가톨릭신문사는 창간 60주년을 맞은 1987년에도 오경환 신부와 노길명 교수를 연구 책임자로 한 연구팀을 구성하여「가톨릭 신자의 종교의식과 신앙생활」이라는 제목으로 전국적인 조사를 실시하였고 그 결과를 출간한 바 있는데, 이 보고서는 교계와 학계로부터 사목적ㆍ학문적 중요성이 인정되어 지금까지도 널리 인용되고 있다.
이번 조사연구도 창간 60주년 기념 조사연구의 후속 연구라는 성격을 강조하여 그때와 동일한 연구 제목을 선택했다.
이번 조사연구는 한편으로 지난 10년간 가톨릭 신자들의 종교의식과 신앙생활상의 변화 추이를 파악하는 추세조사(trend survey)가 될 수 있도록 비교연구에 중점을 둠과 아울러, 오늘의 시점에서 새롭게 제기되고 있는 한국교회의 문제점들과 과제를 실증적으로 파악함으로써 21세기를 앞둔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활동을 모색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그럼으로써 이번 조사연구가 이미 복음화 3세기에 접어들었고 2천년 대희년을 준비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발전적 미래를 위한 대안을 마련하는 데 크게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이번 조사는 한국교회 전문 조사 기관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우리신학연구소가 책임을 맡아 실시했으며 고려대학교 노길명ㆍ조광 교수 등이 조사의 자문역을 맡아 조사의 전문성과 일관성을 꾀했다.
표본 선정 과정
10년 전과 마찬가지로 다단계 집락표집방법(multi-stage cluster sampling)을 사용하여 진행되었다. 이 방법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1) 한국 가톨릭교회의 구조적 성격을 대표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몇. 개의 교구를 선정하고, 교구의 규모에 비례하여 조사대상 본당 및 신자 수를 할당한 다음,
(2) 이처럼 선정된 교구에서 도시지역과 농촌지역, 그리고 부유층 거주지역과 서민층 거주지역이 골고루 포함되도록 몇 개 본당을 선정하고,
(3) 추출된 본당에서 다시 무작위로 몇 개의 반조직을 성정하여,
(4) 마지막으로 선정된 반조직에 속해 있는 만19세 이상의 성인 신자 전부를 조사 대상으로 삼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전국6개 교구의12개 본당에서 1천2백 명의 신자들이 조사의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집중적으로 다룬 10가지 주제영역
(1) 응답자의 사회인구학적, 종교적 배경, (2) 가족 내 종교상황, (3) 종교교육, (4) 교회생활에의 참여, (5) 공동체 의식과 공동체 생활, (6) 선교, (7) 교계제도와 교회내 의사소통 문제, (8) 교회의 사회참여, (9) 타종교에 대한 태도와 민간신앙과의 접촉, (10) 한국교회의 전망과 과제
Ⅰ. 조사의 배경과 방법
작년부터 시작된 수개월간의 준비과정을 거쳐, 본 조사는 금년 2월8일부터 3월7일까지 1개월간 진행되었다. 따라서 이번 조사는 1987년 9월 15일부터 시작된「가톨릭 신자의 종교의식과 신앙생활」조사가 있은 지 꼭 10년 5개월 만에 이루어진 셈이다.
이번 조사에서 목표 사례 수는 1천1백 사례였고, 이 같은 목표 사례수를 채우기 위해 모두 1천2백 명의 신자들에게 설문지를 배포하였다. 이 가운데 1천56명이 설문지를 작성하여 돌려주었기 때문에, 88.0%라는 비교적 높은 회수율을 기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조사팀이 최종적인 분석대상으로 삼은 설문지는 불성실한 응답을 한 10부를 제외하고 남은 1천46부였다.
이번 조사에서 사용된 설문지는 1987년의 조사 이후의 변화를 파악함과 동시에, 오늘날의 상황에서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문제들을 다루어보려는 의도로 기획되었다. 설문지는 모두 47개 문항으로 구성되었는데, 1987년의 조사와 동일한 문항이 10개, 유사한 취지를 담고 있지만 오늘의 상황에 맞도록 질문방식을 수정한 문항이 25개, 이번에 새로이 추가된 문항이 12개였다.
10년 전의 조사에서 자세히 다룬 교의적 측면에 관한 신앙, 전례에 관한 태도, 기도생활과 성사생활에 관한 설문들은 최근 각종 연구기관들에서 자주 다루고 있는 영역이므로 대부분 제외하였다. 그 대신 신자들 간의 공동체 의식과 교회생활에의 참여, 교계제도와 교회내 의사소통 문제, 가족 내의 종교상황, 신앙재교육과 영성훈련, 한국교회의 과제와 관련된 설문들이 주로 보강되었다.
Ⅱ. 조사의 결과
응답자들의 종교적 배경과 경력
이번 조사는 지난 10년 동안 신자들의 종교의식과 신앙생활면에서 현저한 변화가 진행되었음을 여러 측면에서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그 결과를 소개할 예정이지만, 독자들은 이번 조사가 우리 교회의 향후 진로에 큰 영향을 미칠 중요한 시사점들을 풍부히 제공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 첫 번째로 이번 호에서는 신자들의 일반적인 종교적 배경과 경력을 먼저 소개한 후, 이번 조사의 결과에 나타난 전반적인 특징들을 간략하게 제시하려고 한다.
「표-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영세를 받은 시기별로 보면, 30대인 경우가 26.6%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이 20대(21.2%)이다. 법률적인 성인이 된 이후에 영세를 받은 신자가 65.0%로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10년 전에는 고등학교 입학 이후에 영세한 신자의 비율이 61.7%로 나타난 바 있는데, 이로 미루어 현재의 신자 가운데 고등학교 입학 이후에 영세한 신자의 비율은 10년 전에 비해 현저하게 증가한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유아세례를 받은 신자는 전체의 17.8%이고, 만 14세 이전과 만15~19세 사이에 영세한 신자가 각각 8.6%이다.
입교 과정을 보더라도 태중교우는 18.5%에 그치고 있고, 나머지 대부분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든 후 외부로부터 입교한 사람들인 것으로 나타난다.
나이가 들어 외부로부턴 입교한 사람가운데 자발적인 입교자와 타인의 권유에 의한 입교자가 엇비슷한 비율을 점하고 있는데, 자발적 입교자가 약간 많다.

▲ [표-1] 영세시기
입교한 동기를 살펴보면,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하여」입교했다는 사람이 43.2%로 장 많다. 신자들의 모범적 생활을 보고(8.0%), 가톨릭의 전례 분위기 때문에(7.4%), 가톨릭의 교리를 알기 위해(6.3%), 결혼을 위해(5.2%) 입교한 사람도 상당수에 이른다.

▲ [표-2] 입교과정
태중교우나 유아세례자의 비중이 빠르게 감소하고 무종교 상태 혹은 타종교인이었다가 나이가 든 후 입교하는 사람이 크게 증가하는 것이 최근 수년간의 뚜렷한 추세라면, 후자에 속하는 이들은 대체 어떤 종교적 상태에서 가톨릭으로 입교하는가가 중요한 관심사로 떠오른다.

▲ [표-3] 입교동기
10년 전과 비교해보면, 무종교인 상태에서 입교하는 사람의 비율은 예나 지금이나 거의 비슷하다.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방대한 무종교 인구는 여전히 가톨릭교회의 양적인 성장에 가장 중요한 원천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다른 종교를 믿다가 가톨릭으로 개종한 사람들의 비율도 10년 전과 거의 비슷할 수밖에 없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종교를 믿고 있었는가에서는 의미 있는 변화가 발견된다.
신규 입교자 가운데 불교 출신자는 비교적 큰 폭으로 감소한 반면, 개신교 출신자와 기타 종교 출신자는 약간 증가했고, 유교 출신자의 비율은 거의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 [표-4] 입교 이전의 종교
Ⅲ 이번 조사에 나타난 특징들
한국 사회 자체가 그러했듯이, 이번 조사는 지난 10년 동안 신자들의 신앙의식과 종교생활에서 현저한 변화가 진행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조사의 결과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신자들은 1987년 당시의 들뜨고 희망에 찬 상태에서 벗어나 한층 차분하고 냉정해졌다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거품이 빠졌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980년대의 고속성장기를 지나 성장의 정체기에 수반되는 갖가지 후유증이 여러 측면에서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 대다수 신자들이 21세기 한국교회의 장밋빛 미래를 전망했던 10년 전에 비해 막상 21세기를 목전에 둔 현재교회의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은 크게 약화되었고 신자들의 자세도 매우 신중해졌다. 교회생활에 참여하는 열의도 전박적으로 약화되었다. 교회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신자의 비율은 과거와 별 차이가 없지만, 여러 단체에 동시에 가입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신자의 비율은 지난 10년 동안 뚜렷하게 감소했다. 본당 분할과 신학교ㆍ방송국 신설 등 교회 전반의 지출 소요가 급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자들이 각종 봉헌금과 후원금을 지출하는 정도는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또 과거에 비해 「직접적인」전교방식에 대한 선호가 크게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실천에 옮길 신자 개개인의 열의는 오히려 많이 약화되었다. 최근 전교회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여러 사업과 프로그램들 가운데, 절반 이상의 신자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한 경우는 소공동체운동 뿐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소공동체 운동의 영향으로 구역모임이나 반모임에 참여하는 신자가 크게 증가하고 동료 신자들과 신앙에 관한 혹은 일상생활에 관한 대화를 자주 나누는 신자들도 크게 증가했지만, 본당 공동체 안에서 상대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신자들이 크게 증가했다. 동료 신자들과 거의 대화하지 않는 신자들이 빠르게 증가했으며, 남성들의 경우 구역모임이나 반모임에 참여하는 비율은 극히 낮다.
본당 신자들과 형제자매라는 공동체 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신자들이 10명중 3명 이상이며, 10년 전에 비해 그런 신자의 비율이 크게 늘었다. 또한 거의 대부분의 신자들은 가정생활이나 일상생활, 신앙생활에서 어려움이 발생했을 때 마음을 터놓고 상의하거나 의지할 수 있는 가톨릭 신자가 있다고 응답했지만, 그런 의지 상대는 대부분 한두 명으로 제약되어 있다. 신자 10명중 4명 정도는 교회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고, 10명중 1ㆍ5명 정도는 비교적 여러 차례 그런 생각을 했다고 토로하고 있다.
동료 신자들과 자신을 비판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신자들이 적지 않다. 10명중 3.5명가량의 신자들은 동료 신자들이 일상생활 속에서도 신앙인다운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는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고, 거의 비슷한 비율의 신자들이 자기 스스로가 신자답게 살고 있지 못하다는 자책감을 갖고 있다. 때때로 교회를 떠나버리고 싶다고 느끼게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도 동료 신자들의 생활방식에 대한 실망과 자신에 대한 죄책감으로 나타나고 있다. 가톨릭 신자로서의 자부심을 별로 혹은 거의 느끼지 못한다는 신자도 크게 늘어났다.
이번 조사는 신자들의 신앙 유형이 전반적으로 개인주의화 내지 사사화(私事化)의 방향으로 점차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평소 가톨릭 신자로서 갖는 기쁨과 자부심의 내용은 개인과 가족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며, 한국교회 전체에 대한 자부심의 정도 그리고 교회 전체에 대한 관심의 정도는 모두 상당히 약화되었다. 10년 전에 비해 교회의 사회참여에 대한 동의와 반대 의견의 분포는 대체로 비슷하게 유지되고 있지만, 적극적인 찬성의 태도를 취하는 신자들은 거의 절반 수준으로 감소되었다.
교회의 여러 활동에 대한 낮은 인지도와 참여도로 나타나는 교회내 의사소통의 단절 내지 비효율성의 문제도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교회 계통의 출판물 가운데 절반 이상의 구독자를 가진 매체는 주보에 불과하며, 교구장의 사목방침이나 2천 년대 복음화운동, 대희년 준비 등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다」거나 「어느 정도 아는 편이다」라고 응답한 신자들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교회내 의사소통의 장애와 단절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며,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는 의사소통 체계로 인해 서로 말이 통하지 않고 의지가 신자 대중에게 먹혀들어가지 않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의사소통의 장애는 평신도간의 「수평적인」 차원이나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의 「수직적인」 차원 모두에서 심각하지만, 「수평적」 의사소통의 문제보다는 「수직적」 의사소통의 문제가 훨씬 심각하다.
더욱이 교회의 여러 활동에 대한 낮은 인지도는 다시금 그에 대한 낮은 참여도로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