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창시절부터 중년의 나이까지 그에게 어머니는 부끄러운 존재였다. 툭하면 이웃들과 악다구니를 해대고 칙칙한 쥐색 두루마기를 입고 학교로 찾아온 엄마가 부끄러워 숨곤 했다.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우고 민속촌에 갔다가 창피해 모자를 눌러쓰기도 했다.
어머니가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었다는 깨달음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찾아왔다. 1987년 어머니를 여읜 최씨는 “이제는 기억도 희미하고 그리움도 많이 사라져 어머니를 떠올릴 때가 거의 없다”며 “그동안 여기저기에 발표한 어머니에 관한 글을 읽다가 어머니에 대한 참을 수 없는 그리움이 솟구쳐 한참을 울었다”고 고백했다.
어머니를 생각하며 참회의 눈물을 흘린 그날 밤. 최씨는 서랍을 뒤져 어머니가 칠순 무렵 미국에 다니러 갔을 때 쓴 편지를 찾아냈다. 가족을 생각하며 쓴, 맞춤법이 틀린 어머니의 편지는 그의 가슴을 또다시 시퍼렇게 멍들게 했다.
최씨는 문득 생전의 김수환 추기경에게서 들은 말을 기억해낸다. “최 베드로, 이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이 어딘지 아세요? 머리에서 출발해 가슴까지 오는 여행이지요. 불과 세 뼘도 안 되는 짧은 거리지만 이 여행이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의 여행이지요.”
어머니는 30년 전 편지를 보냈지만, 아들은 어머니가 세상을 뜨고 나서야 기억에 없던 편지를 새롭게 발견하고선 통곡한 것이다. 최씨는 “그때는 추기경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다”며 “어머니의 편지가 내 마음의 우체통으로 도착하는 데는 꼬박 30년의 세월이 흘렀다”고 토로했다. 책 제목이 ‘천국에서 온 편지’인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최씨는 자신이 어머니 나이가 돼서야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의 인생을 하나하나 보듬어 나간다.
‘그리운 어머니, 어머니 살아 생전에는 단 한 번도 편지를 쓰지 아니했던 제가 이제야 편지를 씁니다. 그리운 어머니, 이제는 어머니를 생각해도 별로 눈물이 나오지 않아요. 어머니를 이별했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원할 때 어머니를 언제나 만날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에요.’ (213쪽)
그는 어머니의 편지를 소중히 액자에 넣어 자신의 머리맡에 걸어놓았다. 그리고 편지를 읽을 때마다 어머니에게 속삭인다. “미안해요. 엄마. 사랑합니다. 나의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