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2월 현재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귀순 및 탈북자들의 수는 7백여 명. 이중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268명이 90년대 이후 입국했다. 그러나 고향과 부모자식들을 뒤에 두고 자유를 찾아 남한을 찾은 이들은 대부분 생활고와 사회 부적응으로 어려운 남한살이를 하고 있다. 매월 100만 원 이상 급여를 받는 사람이 314명으로 전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고 50만 원 이하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이들도 86명에 달하는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소수 계층으로 전락되고 있는 탈북자들. 해방과 통일, 분단의 현실을 생각하는 8월, 우리가 돌봐야 할 또 하나의 이웃 탈북자 문제를 3회에 걸쳐 진단해 본다.
탈북자들의 현실문제
탈북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바로 「직업」이다.
안정된 직업을 구하는 일은 곧 남한사회에서의 정착과 경제적인 삶을 연결시켜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미취업상태다.
통계상 탈북자들의 직업 유형을 살펴보면 98년 2월 현재「무직」이 252명, 「회사원」이 203명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외에 상업 및 자유업. 은행원, 국영기업. 가사 등의 순으로 직업 분포를 보이고 있다.
이들의 취직이 잘 안되는 이유는 대부분 국가나 담당 경찰에 의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컴퓨터 사무처리 노동강도 등 업부 능력면에서 적극적인 대처를 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국가에서 책임져 주었던 북한에서의 생활은 이들의 자발성 적극성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대다수 탈북자들이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생하고 있다. 93년말 개정된 탈북자 관련법으로 이들에게 주어졌던 혜택도 많이 줄었다.
보상금으로는 보통 사람이 1천4백만 원에서 1천7백만 원을 받고 있는데, 그들이 지난 정보가치에 따라 보상금이 차등 지급된다.
상이한 사회패턴과 경제적 어려움은 탈북자들을 탈선으로 몰고 가는 이유가 되고 있는데 IMF이후 탈북자들의 생활도 더욱 열악해 지면서 생계유지가 어려운 귀순자들의 탈선도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 한 귀순자의 설명이다.
최근 벌어진 귀순자「매춘 커넥션」같은 것들도 그러한 예에 속하고있다.
탈북자들은 남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도시개발 임대아파트에서 생활하는 것이 보통이며 90% 이상이 서울 경인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극심한 생활고로 인해 아파트 관리비를 내지 못한 경우 3~4명이 한집에서 생활하는 모습도 요즘 벌어지고 있는 탈북자들의 흔한 양상이다.
탈북자들은 경제적 문제 외에도 정신 심리적인 측면의 어려움에 시달린다. 북한의 가족 친척 친지들이 자신으로 인해 받아야 하는 고통에 대한 죄책감, 낯선 곳에서의 소외감, 외로움. 남한사회의 북한 및 탈북자에 대한 편견으로 인한 갈등 등이 그것이다.
남한사회에 대한 기대와 실망감, 남한사회에서의 무력감 열등감 등도 이들의 사회적응을 막는 원인에 속한다.
이와 관련 탈북자 사회적응 프로그램을 제시한바 있는 서울대 이장호 교수는 「특히 탈북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정서불안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정신적 치료를 요하는 수준으로 심각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밝힌 바 있다.
생활방식의 상이함으로 인한 문제도 이들에게는 큰 스트레스다.
가치관 생활습관 언어 등 문화차이는 남한사회에 이들이 느끼는 설자리를 좁게 만드는 요인이다.
최근 「한국의 장래-통일과 끝나지 않은 전쟁」이라는 책을 통해 탈북자들에 대한 한국의 배타적 태도를 지적한 미국 인류학자 로이 리처드 그링커 교수의 지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귀순자들의 적응과정은 앞으로 일어날 북한주민의 사회적 통합을 진단할 수 있는 귀중한 선례임에도 한국은 귀순자들을 통해 북한을 알려고 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들의 적응과정을 제대로 지원하거나 유심히 관찰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고 적고 있다.
조지 워싱턴대 인류학과 교수인 그는 총 탈북자 인원중 50%에 달하는 이들이 직업 없는 사회 부적응자로 전락하고 있는데 이는 향후 북한주민들과의 사회적 통합 전망을 더욱 어둡게 만들고 있다고 덧붙이고 있다.
「취직을 해도 북한에서 왔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받는 것이 싫어 그만 두는 친구들이 많다」며 「기술이라도 배우고 싶지만 생계비 마련도 막막한데 언제 학원에 다니겠느냐」는 한 탈북자의 호소는 그링커교수의 주장을 뒷받침 해준다고 할 수 있다.
90년대 이후 그 수가 폭증하면서. 또한 「분단 불감증」고 「통일 기피증」으로 관심이 축소되고 있는 탈북자들.
『그들은 고향 친척 학연 지연 등 아무것도 없는 홀홀 단신들이고 타 문화속에 떨어진 너무도 외로운 이들』이라고 밝힌 서울 대교구 통일사목위원회 간사 오혜정수녀는 『같은 하느님의 모상이라는 면에서 신앙인 만이라도 그들을 하느님의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라고 탈북자들에 대한 신자들의 관심을 촉구했다.
◆ 탈북자 진광호씨
“「일자리」「만남」주선 시급”
귀순 초기 술에 의지 외로움 달래기도
지금은 직장에 결혼까지… 적응 성공
가칭 「천주교 귀순 형제 연합회」준비
정보교환ㆍ사회적응 프로그램 운영
“가톨릭은 성의없어” 무관심 안타까워
김일성 종합대학 출신으로 북한 정보기관에서 근무하다 지난 94년 6월 중국 홍콩을 거쳐 남한에 안착한 진광호씨.
그는 탈북자들 가운데 비교적 남한 사회에 잘 적응한 케이스에 속한다.
현재 국민연금관리공단 징수과에 근무하고 있는 그는 97년 1월 결혼, 유범이라는 한살바기 아들을 두고 있기도 하다.
『일본에 있는 할머니 큰아버지 등 친척분들의 도움이 컸고 이들의 기대를 저버려서는 안되겠다는 남보다 열심히 살아야 겠다는 결심이 컸습니다』
진씨는 『「넘어오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라는 식으로 대부분 탈북자들이 환상에 젖어 남한을 찾는 경우가 많다』면서 『그러나 현실은 탈북자들이 전혀 딴 부류로 취급되는 상황이어서 심한 갈등을 겪는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60~70년대 탈북자들의 수가 소수였을 때는 「귀순자」「영웅대접」을 받았으나 이제 탈북자들은 한국 사회안에서 「필요없는 존재」「적응 못하는 존재」로 낙인 찍히고 있다고 밝힌다.
모든 것을 국가에서 책임져 주던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살았던 탓에 탈북자들은 대부분 단순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고
진씨에 의하면 남한사회 적응에 실패한데다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이면서 20~30대 탈북자 중에는 정부가 지급한 1천5백만 원의 정착금에서 임대아파트 보증금(약 8백만 원)을 뺀 나머지를 모드 환락가에 쏟아붓거나 사기로 털리느니경우도 많다는 것.
진씨 자신도 남한에 도착한후 처음에는 외로움과 남한 사람들의 편견으로 술로 날을 지새는 등 상이한 사회환경 속에서 어려움을 겪었다고 전한다.
사회적응 프로그램 등도 마련하고 싶다고 말했다.
원래 「무신론자」였으나 서울 대교구 통일사목위원회 총무 이기헌 신부 오혜정 수녀 등 성직 수도자들이 보여준 지속적이고 진심어린 베려에 감동, 가톨릭신자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말하는 진광호씨.
탈북자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서는 개신교에 비해 가톨릭에 대한 인식이 미미하고 일부 탈북자들 사이에서는 「가톨릭은 너무 성의가 없다」「외로워서 갔는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돈많은 이들만 가는 곳 아니냐」는 부정적인 얘기도 나오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한다.
『저와 같이 가정과 직업이 안정된 탈북자들은 1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악 7백 명 정도의 탈북자들이 아직 그렇게 많은 인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사랑으로 도닥여 주면 이들은 누구보다도 통일후 남북한 화합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탈북자들을 위해 일자리 하나라도 더 소개해 주고 사람들을 사귈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 주었으면 한다」고 당부한 그는 『IMF로 모두 어려운 시기지만 고향 친척을 멀리하고 떠나온 그들이 고생스럽게 힘들게 살고 있는 것만이라도 기억해주고 알아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8월에 생각하는 또 하나의 이웃 “탈북자” (상) 정착 기반 「직업」이 없다
북한에서 의존적 생활 자세와 컴퓨터등 업무처리 능력 미흡탓
두고온 가족 친지에 대한 죄책감 남한 사회의 이질감 편견 등으로 생활 적응 어려워 탈선하기도
발행일1998-08-16 [제2115호, 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