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을 넘겨 할머니가 되고나서도 독서의 즐거움에 푹 빠져든 이들이 있다. 경기여고 44회 졸업생들로 구성된 ‘경기여고 44회 가톨릭 독서회’(회장 김을영 젬마) 회원들은 언제 어디서든 틈만 나면 손에 책을 쥔다.
매월 첫째 주 화요일 오후 1시는 독서회 모임이 열리는 시간. 지난 4일에도 이달의 선정 도서인 「황혼의 미학」을 손에 든 할머니 20여 명이 서울 명동 바오로딸 서원으로 모여들었다. 김 마리아 수녀(성 바오로딸 수도회)의 진행에 따라 포럼이 시작됐다. 회원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김 수녀의 이야기에 주목했다. “이 책의 저자인 안셀름 그륀 신부님은 아름답고 행복한 노년을 보내기 위해서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우리 회원들에게 특히 가슴에 와 닿는 메시지입니다.”
곧이어 활발한 토론이 시작됐다. 저마다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도란도란 의견을 나눈다. 좋은 이야기가 나오면 놓칠세라 노트에 적어보기도 한다. 이때만큼은 다들 열일곱 학창시절로 되돌아간 듯하다.
독서회가 처음 결성된 것은 1990년 5월 1일. 당시 김 수녀와 인연을 맺고 있던 경기여고 동창생 몇몇이 ‘신앙서적을 좀 더 깊이 있게 읽어보자’는 취지로 만들었다. 이후 독서회는 강산이 두 번 바뀌는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이어졌다.
현재 회원 수는 26명. 그간 187회의 모임을 가졌고, 읽은 책만 232권에 달한다. 초창기엔 서울 미아동 성 바오로딸 수도회에서 시작돼 명동 가톨릭회관을 거쳐 2005년 4월부터는 명동 바오로딸 서원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책이 좋아 시작한 가톨릭 신자들의 모임이지만 ‘경기여고 동창생’이란 인연 안에서 개신교, 불교 신자들도 함께하며 종교를 초월한 우정을 나눠왔다. 회원 세 명은 독서회를 통해 다진 실력으로 각각 수필가와 소설가로 등단하는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지난 20년 동안 독서회가 이어져 온 데는 한결같은 모습으로 지난 세월을 동반해 준 김 수녀의 공이 컸다. 김 수녀는 매달 책 선정은 물론 독서회가 신앙 안에서 가족적인 모임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갖은 정성을 쏟았다.
회원들은 밥 먹고 수다 떨다 끝나는 다른 동창모임에선 찾아볼 수 없는 무언가가 독서회엔 있다고 했다. 구자숙(테레사)씨는 “칠순을 넘기면서는 눈이 침침해져 한 달에 책 한 권을 읽기도 녹록지 않다”며 “손자 손녀들에게 ‘공부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 뿌듯하다”고 했다. 회장 김을영씨는 “회원들과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땐 마치 소녀시절로 되돌아간 느낌을 받는다”며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그날까지 친구들과 신앙과 우정을 나누며 꾸준하게 모임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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