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산 씨, 성지순례 에세이 「순교자의…」 출간
10년간 순교자 발길 따라 걸어온 이야기
백두산 천지서 세례 받을 때 순교사 집필 결심
성지 소개·성인들 삶·절절한 개인 사연 등 풀어
1998년 5월, 소설가 한수산(요한 크리소스토모·63)씨가 미리내성지 성직자묘역을 찾았다. ‘나환우들의 아버지’ 고 이경재 신부(1926~1998)의 영결미사가 열리던 날이었다. 한 씨와 이 신부는 십년지기다. 그는 1989년 9월 중국 여행길에 올라 백두산 천지에서 이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이 신부를 떠나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는 골배마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서 한국교회 순교사를 소설로 쓰기로 결심했다. 그것은 한 씨가 세례를 받으며 드린 하느님과의 약속이었다. 이경재 신부가 바라고 기다리던 일이었고, 자신과의 약속이기도 했다.
매달 한 분의 순교자를 찾아가는 여정은 그렇게 시작됐다. 한 씨는 순교자들이 남긴 흔적 속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에 고이는 이야기들을 적어 내려갔다. 그 고백들은 월간 「생활성서」에 고스란히 실려 1998년 8월부터 2008년 4월까지 103회 동안 연재됐다.
한 씨가 최근 그 10년의 기록을 모아 성지순례 에세이「순교자의 길을 따라」(전 3권)를 냈다. 그는 책머리에 “하느님과의 약속, 백두산에서 드린 이경재 신부님과의 약속, 그리고 골배마실에서 나눈 저 자신과의 약속, 이 책은 그 세 가지의 약속입니다. 초라하나 내게는 소중하기만 한 그 기록을 묶어서 여기 여러분들 앞에 놓습니다”라고 적었다.
한 씨는 지난 10년간 순교자들의 발길을 따라 걸어온 이야기를 에세이 형태로 풀었다. 이 책이 기존의 백과사전식 성지순례 안내서와 차별화되는 이유다. ‘경기?서울’, ‘충청?강원’, ‘전라?경상?제주’ 등 각 권역별로 나눈 성지 소개와 성인들의 삶, 그리고 구구절절한 개인적 사연이 실타래처럼 엉켜 있음에도, 짧은 호흡으로 감성을 자극하는 그의 글솜씨 덕에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지만 결코 ‘쉬운 길’은 아니었다. 뙤약볕의 논두렁을 끝도 없이 걸었고, 어둡고 으스스한 산길에서 길을 잃기도 여러 번이었다. 그 정도는 열정과 집념으로 이겨냈다. 무엇보다도 그의 가슴을 짓누른 것은 갈 때마다 텅 비어 있는 성지를 홀로 외로이 걷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매달 순례길에 나설 때면 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왔고, 어쩌다 몸져누워도 그날만 되면 거짓말처럼 벌떡 일어났다.
그는 “순교자들을 찾아다니던 그 나날들 속에서 나는 그분들의 자리에 나를 세워 놓고, 나는 어떨 것인가를 수없이 묻고 또 물었다”며 “우리 순교자들의 거룩한 발자취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오늘도 배교자의 삶을, 아니 밀고자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스스로 묻게 된다”고 고백했다.
※구입 문의 02-945-5986~7 생활성서사
곽승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