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떨려오면서 순간 온몸 마디 하나하나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불쌍한….”
사형수들의 대모로 불리는 조성애 수녀(78·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1997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김용제가 죽음을 기다리며 써내려간 글과 그와 주고받은 자신의 편지를 엮은 「마지막 사형수」를 받아든 때를 조 수녀는 그렇게 떠올렸다.
「…사형수」는 평범한 사람이 상상하기 힘든 아픔 그 자체인 사형수와 그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 안은 구도자의 슬프고도 아픈 고백이라고 할 만한다. 때문에 책에 배인 처절한, 그래서 더욱 감동적인 고백들은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고백록’을 떠올리게 한다.
조 수녀에게 「…사형수」는 세상에 내놓고 싶지 않은 아픈 기억이다. 헤집을수록 새록새록 돋아나는 아픔의 살이 오랜 기억 속의 일들을 바로 어제인 양 되살려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책이 나온 후 지금껏 한 장도 넘기지 못하고 있다. 아니, 눈길 줄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굳이 고백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런데도 용제는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게 있다면서, 하느님 앞에 고백해야 한다며 써내려갔습니다.”
시각장애를 지니고 태어나 세상을 향한 분노로 2명의 목숨을 앗은 사형수 김용제의 삶은 자신에게나 조 수녀에게는 ‘불편한 기억’이다.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이해할 수 없는 기억이다. 그런 그가 주님 앞에 털어놓고자 했던 기억, 그리고 그 이유가 「…사형수」에 담겨 있다.
“죄를 씻기 위해 온갖 인간적인 고통과 두려움을 무릅쓰고 자신이 저지른 죄의 뿌리까지도 드러내고자 했던 것입니다.”
죽음을 예견했음일까, 반년 넘게 차근차근 써내려간 ‘고백록’은 세상에 남긴 마지막 선물이 되어 어머니처럼 따르던 조 수녀의 품에 전해졌다. “용제가 자신이 볼 수 없는 세상에 들려주고자 했던 이야기를 떠올려 봅니다.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지어지고,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는데 그 사랑을 사형수가 되어서야 알게 되다니…. 그 아픔을 헤아릴 수 있을까요.”
20년 넘게 서른 명이 넘는 사형수들을 만나왔고 지금도 사형수들을 만나고 있는 조 수녀는 “하느님 외엔 ‘절대’란 말을 붙여선 안 된다는 깨달음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절대’ 변할 것 같지 않던, 말 그대로 흉악범이 천사로 부활할 때의 감동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사형수」를 통해 단 한사람이라도 하느님 사랑을 제대로 알고 마음을 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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