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미국에서 갓 사제품을 받고 스물 일곱 나이에 선교사를 지원해 평생을 한국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헌신한 소 알로이시오(알로이시오 슈워츠·Aloysius Schwartz·1930~1992) 신부.
그의 자전적 이야기가 최근 「가장 가난한 아이들의 신부님」(소 알로이시오/박우택 옮김/책으로여는세상/272쪽/1만원)이란 제목으로 번역돼 나왔다. 1957년부터 소 신부에게 한글을 가르치면서 그와 평생 인연을 이어 온 박우택 씨가 우리말로 옮겼다.
‘당시 한국의 모습은 세상의 종말처럼 보였다’는 소 신부의 고백처럼, 그가 한국 땅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거리는 고아와 걸인 천지였다. 부산 송도본당 주임신부로 사목하게 된 그는 부산의 판잣집과 천막촌을 직접 찾아다니며 가난하고 병든 이들, 부모 잃은 아이들을 만났다.
아버지 장례를 치를 돈이 없어 피를 팔아야 하는 어린 딸, 부모를 여의고 넝마주이가 된 아이들, 제대로 병원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죽어가는 병자들을 보며 소 신부는 미국의 모금단체인 ‘한국자선회’를 세웠다. 한국의 부녀자들에게 일거리를 마련해주는 ‘손수건 사업’도 펼쳤다.
1960년대 당시는 한국전쟁의 후유증과 가난으로 고아들이 많았던 시대. 소 신부는 ‘마리아수녀회’를 창설해 수도자들로 하여금 고아들의 엄마가 되게 하고, 보육시설을 만들어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소년의 집’은 1969년 부산을 시작으로 1975년 서울, 1985년 필리핀, 1990년 멕시코로 진출했다.
소 신부가 선종한 후에도 ‘소년의 집’은 과테말라와 브라질에도 세워져 지금도 수만 명의 가난한 아이들이 수도자들의 따뜻한 돌봄과 교육을 받으며 희망 속에 자라고 있다.
그는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나에게 해준 것’이라는 복음 말씀을 몸소 실천한 참 사제였다. 누더기와 땟국과 멍 자국에 얼룩진 아이들의 얼굴에서도 늘 따뜻한 희망을 발견하고, 가난 속에서도 한국 밤하늘의 아름다움을 찬미한 인간미 넘치는 아버지였다.
소 신부는 1989년 루게릭병 진단을 받고 3년간 투병하다가 1992년 3월 16일 필리핀 마닐라의 ‘소년의 집’ 사제관에서 조용히 숨을 거뒀다. 교황청은 그가 선종하기 2년 전인 1990년 2월 1일 소 신부를 고위 성직자 품위이자 교황 명예 전속 사제인 ‘몬시뇰’로 임명했다. 또한 우리 사회는 1975년 국민훈장 동백장과 1983년 막사이사이상, 1984년과 1992년엔 두 번에 걸쳐 노벨평화상 후보로 올리며 그의 공적을 기렸다.
소설가 박완서(정혜 엘리사벳·78)씨는 추천사에서 “이 책을 통해 지금보다 훨씬 가난하고 단순소박하게 살았던 시절에 대해 향수에 가까운 그리움이 일고, 평생을 청빈하게 지내신 소 신부님의 생활태도에 진정한 스승의 모습을 느낀다”며 “소 알로이시오 신부님, 사랑합니다. 당신을 통해 주님의 현존을 믿나이다”라고 적었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위원장 양성우)는 최근 이 책을 ‘11월의 읽을 만한 책’으로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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