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단어는 경영학 강의실에서 좀처럼 듣기 어렵다. 기업현장의 치열한 정글 속에서 기업의 생존논리는 적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고, 이를 위해 보다 많은 이익을 내야한다.
가능한 한 비용을 적게 들이고 수입을 늘려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시장에서의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기업의 모든 활동은 비용최소와 이익극대의 논리로 정당화 된다. 남이 가져가는 것은 내것이 빼앗기는 것이고, 다른 이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라는 것은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다.
사랑과 이익은 반드시 배치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인류는 이제 새로운 문명시대를 맞이하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보다 높은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게 되었다. 기업경영에서도 종업원, 소비자, 협력업체, 투자자, 지역사회 등 여러 이해 당사자로부터 기업이 가지는 신뢰와 사랑이야말로 지속가능한 경쟁 우위의 원천이 된 것이다. 지난 수백 년간 인류가 선택한 자본주의라는 경제시스템 안에서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할 때 탐욕이 가져오는 공멸의 덫을 목격하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서는 더욱 그렇다. 사랑의 기업가 정신에 대한 공감은 그 어느 때보다도 힘을 받고 있다.
최근 교황 베네딕토 16세 성하께서는 새로운 사회교리 칙서인 ‘진리안의 사랑’에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경제시스템이란 자연과학적인 공정성의 논리를 초월한 초자연적인 사랑의 덕목을 갖춘 것이어야 한다”는 매우 중요한 말씀을 주신다.
기업 존재의 본원적 의미와 새로운 기업형태에 대한 우리 모두의 성찰이 요구되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의 기업활동은 이익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보다 높은 사회적 가치를 지향함을 궁극적 사명으로 삼아야 하는데 그렇다고 이것이 이익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 모든 것은 진리안의 사랑을 통해서 이루어진다”(진리안의 사랑, 38절). 진리안의 사랑이란 단지 감정에 머무르지 않는 세상을 바꾸는 사랑의 힘이다. 사랑은 우리의 세속적 지식 안에서 더욱 힘을 발휘하게 되고, 세상은 사랑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진정한 사랑의 모습을 우리는 가족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 그렇다. 사랑의 정신을 실천하는 기업가는 우선 종업원을 자기 자식이라고 생각하고 회사를 경영해야 한다. 그럴 때 종업원은 공감하고 회사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가질 것이다. 사랑과 긍정의 에너지로 충만한 종업원의 서비스는 고객의 만족과 사랑을 부를 것이고 이는 다시 자본의 공감과 충성심으로 이루어진다. 사랑이 곧 이익이 되는 것이다. 사랑과 기업경영의 이익이라는 현실적인 고려는 전혀 별개의 것이 아니다.
영어단어의 사랑인 러브(love)는 산스크리트어인 로바(lobha)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그 의미는 탐욕을 뜻한다고 한다. 이는 절묘하게도 사랑의 의미를 짚어낸다. 사람들은 어떤 대상을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쉽게는 그 대상을 소유하려하고 지배하고, 억압하려한다.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진정한 사랑의 실천을 위한 조건은 무엇 보다도 결핍의 사고를 극복하고 풍요의 사고를 지향함에서 시작된다. 지족이타(知足利他)의 삶의 모습이라고 할까? 탐욕이 아닌 진정한 사랑의 출발이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를 포도밭에 비유하시면서 나중에 온 일꾼에게도 먼저 와서 일한 다른 이들과 동일한 1데나리온의 품삯을 주라고 하신다. 그리고 새벽부터 수고한 먼저 온 일꾼들에게는 이를 받아들이도록 하신다. 이는 결코 쉽지 않겠지만 풍요의 사고와 온유한 마음을 가질 때 가능하다. 우리의 깊은 내면을 성찰하고 하느님께 우리를 온전히 맡길 때 우리는 넓은 땅을 발견하게 되고 그 텅 빈 공간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며 보다 풍요로운 사고를 가지고 공동선의 정신을 추구할 때 기업의 이익은 더불어 따라오는 것이다. 다른 이의 희생을 바탕으로 오로지 내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려는 제로섬의 사고는 이제 그토록 우리가 집착해 온 이익을 위해서라도 버려야 한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산업화 시대의 경영학 교과서 마지막 장을 접고, 이제는 새로운 사랑의 경영학 교과서 첫 장을 읽어 보아야 한다. 그래서 경영학 강의실에서도 지금부터는 사랑이란 단어가 더 많이 들려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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