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녕 나무는 내가 안은 게 아니라 / 나무가 나를 제 몸같이 안아주나니 / 산에 오르다 숨이 차거든 / 나무에 기대어 / 나무와 함께 / 나무 안에서 / 나무와 하나 되어 쉬었다 가자’ (‘나무 안에서’ 중)
한국가톨릭문인회 회장을 지낸 김형영(스테파노·65) 시인이 최근 자신의 여덟 번째 시집 「나무 안에서」(문학과지성사/116쪽/7000원)를 냈다. 지난 2004년 펴낸 「낮은 수평선」 이후 5년만이다. 그동안 한두 편씩 적어 놓은 신작 시 가운데 46편을 추려 엮었다.
올해로 시력(詩歷) 43년을 맞은 시인은 지난 몇 년 동안 숲길 걷기에 흠뻑 빠져 지냈다. 서울 관악구 인헌동 자택과 연결되는 등산로를 따라 매일 관악산 기슭을 산책했다. 그가 산책길에서 만난 나무, 꽃, 풀, 바위, 벌레들이 시가 되어 이번 시집을 낳았다.
시인은 그곳에서 만난 나무를 비롯해 거기 깃들어 사는 작디작은 형상들에 시종일관 따뜻한 눈길을 보낸다. 만물에 대한 경외감으로 자신을 낮추고, ‘그 바람 / 그 깊이 / 그 넓이 / 한이’(‘봄 바람’ 중) 없음을 노래하며, 새순과 꽃잎이 벙글면서 내는 소리에 한껏 취한다. 자연을 관조의 대상으로 바라봄이 아닌, 시인 스스로 자연의 품에 안겨 자연과 하나 되는 초월적 교감을 이뤄낸다.
‘너 없이 무슨 바람이 시원하며 / 너 없이 무슨 공기가 맑겠느냐 / 너 없이 태어난 것이 무엇이고 / 너 없이 자란 것이 무엇이냐 / 네가 서서 잠잠히 자라기에 / 우리는 떠돌아도 편안하구나’ (‘우리는 떠돌아도’ 전문)
시집의 마지막 부분은 추모 헌시로 장식했다. 고 김수환 추기경 영전에 바치는 ‘바보웃음의 향기 하늘에도 퍼져라’를 비롯해 고 선우경식(요셉) 요셉의원장을 생각하며 쓴 ‘사랑의 숨결’, 고 임영조(요한) 시인을 그리며 쓴 ‘너와 나 사이’ 등 8편이 실렸다.
‘당신의 온화한 웃음 때문에 / 저희는 따라 웃기만 하다가 / 웃음 뒤에 숨겨놓은 불면의 30년 / 당신의 그 속마음 헤아리지 못하였어도 / 올곧은 샘이시여! 이 땅에 퍼뜨린 당신의 바보웃음의 향기 하늘에도 퍼져라 퍼져라 퍼져라’ (‘바보웃음의…’ 중)
문학평론가 장경렬 교수(서울대 영문과)는 해설에서 “시집 「나무 안에서」를 읽다보면 무엇보다도 맑고 깨끗한 시심이 느껴진다”며 “아울러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시어들과 시적 이미지들이 풍요롭게 확인되기도 한다”고 평했다.
1944년 전북 부안 출생인 김형영 시인은 1966년 문학춘추 신인 작품 모집과 1967년 문화공보부 신인 예술상에 당선되며 등단했다. 「침묵의 무늬」 등 7권의 시집과 시선집 「내가 당신을 얼마나 꿈꾸었으면」 등을 펴냈으며, 현대문학상(1988)·한국시협상(1993)·서라벌문학상(1997)·한국가톨릭문학상(2005)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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