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근처 사는 어르신 신자께서 연구소로 불쑥 찾아오셨다. 답답한 마음에 얘기라도 나누고 싶으셨던 모양이었다. 용산 참사 현장에서 봉헌되는 미사에서 자주 뵈었는데, 역시 그 얘기였다.
“초상이 나더라도 3일장을 치르고 나면 산 사람은 슬픔을 잊고 살아야 하는데, 아홉 달이 넘도록 장례도 못 치르고 있으니 유족들 가슴이 어떻겠어? 절대 사람이 할 짓이 아냐. 이러다 우리 신자들도 천당 갈 사람 하나 없을 거야. ‘서울주보’에 용산 소식을 실어서 신자들에게 알려야 하는데 그러질 않으니 안타까워.”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의 깊이를 아직 잘 모른다. 다만 큰 매형이 사고로 돌아가셨을 때 장례 3일 동안 영정 앞을 떠나지 않은 채 쉬지 않고 울었던 누나를 보면서 그 슬픔이 얼마나 크고 깊은 것인지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용산 참사 유족들은 그 슬픔을 그대로 간직한 채, 아니 어쩌면 날마다 그 슬픔이 자라났을 아홉 달을 보냈다. 그 마음속이 어찌되었을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아니 싫다.
신자들 가운데 천당 갈 사람이 없다? 아마도 최후 심판 비유(마태 25,31-46)를 생각에 두고 하신 말씀이리라.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시거나 목마르시거나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또 헐벗으시거나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시중들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아뿔싸! 최후 심판의 기준이 ‘가장 작은 이’에게 어떻게 대했느냐는 것이 분명하다면, 용산 참사 희생자와 유족을 위해, 철거민을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우리는 ‘왼쪽의 염소’로 분류될 게 틀림없다.
용산 참사 유족을 위해 뭐라도 해야겠다는 간절한 마음에서, 이미 은퇴한 전주교구 문정현 신부가 지난 3월 말부터 용산 참사 현장에 거주하며 매일 미사를 봉헌하기 시작했다. 서울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위원장 이강서 신부가 용산 참사 현장에서 일주일 동안 연례 개인 피정을 한 뒤 유족을 남기고 차마 떠날 수 없다며 눌러 앉았다. 그 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사제들이 용산 참사 현장에 천막 치고 기도회를 이어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사제들이 경찰에게 폭행당해 옷이 찢기고 멍이 드는 일도 몇 차례 있었다. 이처럼 용산 참사 현장에 모여 날마다 미사 드리고 교구마다 돌아가며 시국 기도회를 열어도 해결 기미 없이 가을이 깊어지자, 어떻게든지 겨울 전에 해결해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에서 문규현, 전종훈, 나승구 신부가 10월 12일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미사를 드린 뒤부터 단식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문규현 신부가 단식 열흘째에 심장마비로 쓰러져 나흘 뒤에야 겨우 의식을 되찾았다.
이제 정말 할 만큼 했다. 유족들은 유족들대로 슬픔을 뒤로 한 채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을 요구했다. 그러다 영정이 부서지는 일도 겪고 팔을 다쳐 깁스를 하는 유족도 생겼다. 사제들은 사제들대로 경찰들에게 얻어맞는 봉변까지 당하면서도 날마다 미사를 드리고, 밤새 차가 다니는 길가 천막에서 새우잠을 자 가며 용산 참사 유족을 보호하고 있다. 시민 사회 단체들은 그들대로 추모제도 열고 국민 법정도 열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 그런데도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새 총리가 나서도 해결되지 않았다. 아니, 기껏 용산 참사 현장을 찾아온 새 총리는 총리가 나설 일이 아니라 한다. 그러면 누가 나서서 이 일을 해결해야 하나? 인천교구 호인수 신부는 최근 글(‘갈라진 시대의 기쁜 소식’ 904호, 16-17쪽)에서 주교님들이 나서주실 것을 호소하였다.
“주교님들이 나서시면 그동안 내색도 않고 엎드려 있던 수많은 사제들과 신자들이 그 뒤를 따라나설 것은 너무도 뻔한 일입니다. 전국의 주교님들이, 아니 가까운 서울, 수원, 인천교구의 주교님만이라도 주교관을 쓰고 목장을 짚고 용산에 나서시면 아마 용산역 앞의 넓은 대로는 세 교구의 사제와 신자들로 가득찰 것입니다. 그날이 바로 용산문제가 해결되는 날이겠지요. 제가 지금 꿈을 꾸고 있습니까?”
오는 11월 2일 월요일 저녁 7시,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용산 참사 해결을 위해 또 한 번 미사를 드릴 거라고 한다. 이번에는 열일 제쳐두고 가봐야겠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기도라도 하지 않으면 부끄러워서 하느님 앞에 어찌 나서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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