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교리교사들은 대부분 어머니 교사들로서 3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까지 다양한 계층의 교사들이 가정복음화를 위하여 교회 안에서 봉사하고 있다. 교사들을 위한 교육 중에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칠판에 적고 하나씩 지워 가는 작업을 한 적이 있다. 하나하나 지워가는 과정이 흥미진진… 최종적으로 남은 단어는 ‘신앙’과 ‘자녀’였다. 교사다운 선택에 흐뭇했다. 과연 우리 교사들은 어떤 것을 선택할까? 궁금했다. 내심 나는 단연히 신앙이려니 했는데 여기저기서 의견이 분분하더니 마지막 선택은 의외로 신앙이 지워지고 자녀가 남았다. 한동안 멍했다. 그리고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세상과 시대의 흐름을 탓하며 2등으로 밀려난 주님께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 자녀를 선택한 교사들이 섭섭하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나의 생각을 돌려놓은 글이 있었다.
“하느님은 3등입니다.”
1등은 하고 싶은 일, 2등은 해야 하는 일, 3등은 하느님 만나는 일. 하고 싶은 일 다 하고, 해야 하는 일 다 마치고, 그 후에 여유가 있으면 하느님을 만나줍니다. 하느님은 3등입니다.
어려운 일이 생길 때도 하느님은 3등입니다. 내 힘으로 한 번 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도와 달라고 하고, 그나마도 안 될 때 하느님을 부릅니다. 하느님은 3등입니다.
거리에서도 3등입니다. 내게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은 내 자신, 그 다음은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 그 다음에야 저 멀리 하늘에 계신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은 3등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 나는 1등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부르기만 하면 도와주십니다. 내가 괴로워할 때는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오십니다. 아무도 내 곁에 없다 생각들 때는 홀로 내 곁에 오셔서 나를 위로해 주십니다. 나는 언제나 하느님께 1등입니다.
어느 시설 벽보판에 붙어있는 글이었다.
부모에게 있어서 일등은 자녀임을 이해하지 못한 나에게 부모가 어떤 존재인지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글이었다. 하느님에게 우리가 일등이듯이 부모는 어린 자녀에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보여주고 드러내주는 분이기에 부모에게 당연히 일등은 자녀였다. 부모는 자녀에게 하느님과 같은 존재다. 우리의 부모들은 이미 이것을 하느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았다. 그러기에 그들의 선택에 하느님도 기뻐하셨을 것이다. 부모의 책임과 임무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고 사는 이 나라 이 땅의 많은 부모들에게 감사한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주신 소명을 깨달았기에 하느님의 눈높이에서 자녀를 일등으로 뽑은 우리 교사들이 대견했다. 그리고 든든했다. 한편으로는 그들이 이 땅에서 하느님으로 살기가 얼마나 힘들까? 그들의 고충을 생각하면 새삼 고개가 숙여진다.
이 사건이 있기 전에는 교사교육 때 어린자녀를 둔 교사들이 쉬는 시간이면 이곳저곳에서 전화로 아이들과 통화하는 모습을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지 못했다. 과잉보호나 신앙이 없다는 등 내 기준으로 그들을 판단했다. 그런데 이젠 그 모습이 그지없이 아름답게 보인다. 하느님의 마음이 저 마음이시겠지,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노심초사하시는 그 하느님 ? 부모의 사랑을 우리 자녀들은 얼마나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느낄까?
교사들에게 잠시나마 오해한 것이 미안한 생각이 든다. 동시에 하느님을 일등으로 모시지 못하고 사는 나 자신을 반성할 수 있게 해 주신 어머니 교사들께 감사드린다.
나에게 있어서 하느님은 몇 등인가? 머리로는 당연히 하느님이 일등이다.
그러나 실제 내 삶의 순간순간 선택은?
“주님! 죄송합니다. 당신의 일을 한답시고 당신을 잊어버리고 당신과의 관계를 등한시 한때, 그때 당신은 이등이었습니다. ‘수도생활 잘 하기 위해선 건강이 중요해 그래야 주님의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지’하면서 내 건강을 위해서는 열심 하면서 정작 이웃의 필요에 얼마나 능동적이었나? 주님! 죄송하지만 그때도 당신은 이등이었습니다. 또한 당신의 창조물이 시름 중에 있음에도 무감각하게 내 편리만 찾은 그때도 당신은 이등이었습니다.”
나도 하느님을 일등으로 모시고 살았으면 좋겠다. 만사를 제쳐놓고 그분을 만나고, 작은 고비마다 나에게 손을 내미시는 하느님을 일등으로 생각하고, 의논하고 투정부리고 감사하며 살고 싶다. 하느님에게 내가 언제나 일등이듯 나도 언제나 하느님을 일등으로 모시는 그런 사람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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