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법’이 2009년 7월 23일부터 시행되어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적재산권을 보호하는 이 법의 시행으로 인터넷에 무작위로 올라오는 갖가지 유형의 게시물의 출처가 명확해야 할 뿐만 아니라, 명확하다 하더라도 원작자의 동의 없이는 게재할 수 없게 되었다. IT강국이자 인터넷 보급률 세계 최고수준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법의 시행은 참으로 바람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무책임하게 게시되고 복제되는 영화, 음악, 그림, 사진, 시 등 그 어느 것 한 가지도 원작자의 창조적인 노력없이 이루어진 것은 하나도 없다. 따라서 원작자의 지적재산권은 보호받아야 마땅하며, 그러한 노력에 상응하는 대가 또한 지불되어야 마땅한 것이다.
그럼에도 ‘저작권법’을 포함하여 모든 법규는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는 점을 전제하더라도, 이 법이 시행되는 시점에서 1952년 소아마비 백신의 개발에 성공한 피츠버그대학의 의사이자 과학자였던 조나스 에드워드 소크 박사의 인류애 정신을 새삼 되돌아보게 된다. 1950년대 미국에서는 해마다 5만8000여 명의 소아마비 환자가 발생하여 부모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당시 이 병을 퇴치할 수 있는 백신의 개발에 성공한 소크 박사에게 “특허는 누구에게 있습니까?”라고 방송인 에드 머로가 묻자, 그는 “아무에게도 없습니다. 당신은 태양을 특허 낼 수 있습니까?”라고 일축해버렸던 것이다.
굴지의 제약회사들이 유혹하는 특허의 양도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던 소크 박사의 박애정신은 “태양을 특허 낼 수 있습니까?”라는 한마디 말로 요약된다. 그의 인간중심주의 정신은 미국 「타임」지의 ‘커버스토리’(1954년 3월 29일)에 소개되었던 ‘Polio Fighter Salk, Is This the Year?’ 라는 표제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20세기를 빛낸 가장 위대한 인물 100명에 선정되었다는 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자신의 연구 성과를 전 인류의 공동자산으로 함께 하고자 했던 소크 박사의 이와 같은 숭고한 인류애 정신 덕분으로, 백신이나 치료약이 개발된 수많은 질병 중에서도 오로지 소아마비만이 ‘박멸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따라서 ‘세계보건기구’는 소아마비의 박멸선언을 현재 준비 중에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1950년대 2000여 명의 소아마비 환자가 발생했지만, 1984년 이후 단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아 2000년 10월 소아마비의 종식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바 있다. 이처럼 자신의 연구 성과를 아무 조건 없이 전 인류의 건강한 삶을 위해 기꺼이 헌납한 소크 박사의 정신, 그것은 바로 가톨릭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강조하고 있는 ‘사랑’ 그 자체이며, 그것을 그는 몸소 실천했던 것이다.
주님께서는 613개에 이르는 율법의 조항을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집약했으며, 그것은 동시적으로 이루어지는 사랑에 해당한다. 이러한 점은 “서로 사랑하십시오, 이것이 전부입니다”라고 강조하며 프란치스코 가죠프니체크를 대신해 아우슈비츠 아사감방에서 세상을 떠난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계명을 몸소 실천하며 나치 치하에서 유색인과 유태인을 옹호하고 항변하다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세상을 떠난 베른하르트 리히텐버그 신부,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봉사할 수 있었으니 참으로 행복하다”며 몰로카이 섬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다 자신도 한센병에 감염되어 세상을 떠난 다미안 신부,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마지막 당부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김수환 추기경의 말씀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저작권법’과 ‘하느님 사랑·이웃 사랑’이 서로 다른 범주에 해당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일전에 한 원로시인이 취미로 배운 그림을 곁들여 시화전을 개최하자마자 부랴부랴 철거했다는 일화는 씁쓸하기만 하다. 어렵게 마련한 공간대여비와 시의 선정과 그림 등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시화전을 열었지만, 개최 당일 밤에 철거해야 했던 까닭은 어느 시인이 “왜 남의 시를 가지고 저자의 허락도 없이 시화전을 엽니까? 저작권법도 모르십니까?”라는 전화 때문이었다고 한다.
저작권법, 바로 그 법이 시행되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서 아무런 대가없이 전 인류에 대한 박애정신을 실천한 소크 박사의 “당신은 태양을 특허 낼 수 있습니까?”라는 말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게 된다.
윤호병 교수(빈첸시오·추계예술대학교 문학부 문예창작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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