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의사’면서 ‘작가’였던 이들은 의외로 많았다. 러시아의 안톤 체호프와 영국의 코넌 도일이 그랬고, 독일의 고트 휘트먼과 프랑스의 프랑수아 라블레도 의사였다.
한국에는 김춘추(루카·65) 가톨릭의대 혈액내과 교수가 대표적이다. 조혈모세포 이식과 백혈병 치료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그는 1998년 「현대시학」을 통해 문단에 나왔다.
김 교수가 이달 말 정년퇴직을 앞두고 시집 「등대, 나 홀로 짐승이어라」(솔출판사/108쪽/7000원)를 냈다. 그의 자서에 따르면 “시집도 아니고 시선집은 더더욱 아닌 이 가여운 소출을 2009년 정년퇴임을 맞아 저의 ‘시 묶음’이라 부르고 싶다”는 그것이다.
시집에는 1997년 출간한 첫 시집 「요셉병동」을 비롯해 「성(聖)오마니!」, 「하늘목장」, 「얼음 울음」, 「산 속의 섬」, 「어린 순례자」 등 그동안 내놓은 시집 6권에서 자신이 직접 가려 뽑은 시에다 신작시들을 덧붙여 총 65편이 실렸다.
김 교수의 시들은 대부분 간결하고 명징하다. 애간장을 녹이면서도, 때론 즐겁게 자유자재로 노니는 선 굵은 시다.
이번 시집에도 일상의 새벽에서 본디의 나와 독대하는 미명, 혹은 바쁜 일상 중 짠하고 아름다운 것들에 맞닥뜨릴 때 느끼는 살가운 정감의 서정이 가득 담겨 있다.
‘아가야, 온몸에 / 흰 피만 불어나는 아가야 // 나는 여윈 너의 엉덩뼈에 / 쇠못을 박고 / 밤새 영안실 모퉁이에 기대 우는 / 귀뚜라미이거나 어둠을 / 보듬고 눈 뜨는 올빼미가 된다 // 수천 년도 더 묵은 전생에 / 이차돈의 업 같은 걸 혼자 쓰고 / 하얀 피만 도는 하얀 비둘기야 // 아무래도 나는 한 조각 꿈도 / 못 푸는 요셉이거나 황혼에 / 쐬주나 까는 애비일 뿐이구나 // 아가야, 뵈지 않는 쇠못을 / 보이는 가슴마다 꽁꽁 / 박고 간 아가야’ (‘요셉병동’ 전문)
김남조(마리아 막달레나) 시인은 추천사에서 “김춘추 시인의 작품은 예리하고 청명하면서 슬프도록 간절한 인간애가 전 작품을 관통하고 있다”며 “자기 시의 신념과 가치를 잘 알고 그걸 지키며 시를 쓰고 있는 보기 드문 시인”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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