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2시.서울에서 찾아온 손님(?)을 위해 몇차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늦은 점심을 차려내는 한명희(요안나ㆍ양구본당)씨의 모습에선 시골 아낙의 정겨움이 풍겨져 왔다.
도시의 유혹을 떨치고 서울에서 다섯시간은 족히 걸려야 닿을 수 있는 강원도 양구의 산자락에 파묻혀 산 지 5년,한명희씨의 가족은 아들 승철이가 생겨 삶의 깊이를 더해가고 있었다.
연세대(원주캠퍼스)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횡성군 농민회 간사로 일하다 전국 농민회총연맹 강원도연맹에서 일하던 남편 오용석씨(33)를 만나 사방 산밖에 보이지 않는 양구 도사리에 보금자리를 틀었던 한씨는 이제야 진짜 농사꾼의 대열에 발을 들여 놓았을 뿐이라고 털어 놓는다.
「스스로 농사꾼으로 변화돼 나가는 모습을 느낄 때 보람을 느낍니다」
살림을 시작한 첫해 외진 자투리땅을 합쳐 논 1,600평과 밭 1,000평에 농사를 시작한지 한 5년만에 2,500평의 논과 4,000평의 밭으로 키워낸 두 사람은 대학시절 농촌봉사활동을 다니다 농촌에 애착을 느껴 농민으로의 삶을 결심하게 됐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삶이란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허름한 농가를 얻어 살림을 시작하던 초기만 하더라도 마을 이웃들의 눈은 곱지 않았다고 한다. 소위 대학물을 먹은 이들 부부가 1년이나 버틸까 싶었던 것이다.
이제 막 아장아장 걷기 시작해 엄마 한명희씨의 속을 태울 때가 한두번이 아니라는 세살배기 승철이, 첫아이 승철이를 바라보는 이들 부부의 눈은 결코 높은 곳을 바라보진 않는다.
「같이 농사지을 자식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 뿐입니다」
스스로에게 당당하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현재의 삶이 성공한 삶이 아니냐는 이들 부부의 반문 속에서 삶에 대한 사랑이 느껴졌다.
「족대들고 개울로 물고기를 잡으러 다니는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밝은 미래를 꿈꾸고 싶다」는 한명희씨는 아이다움을 잃어버리게 하는 오늘의 교육풍토에 짙은 한숨을 뱉어냈다.
한씨는「일하는 것 같지 않지만 가을걷이 때면 농사꾼의 그간의 노력이 확연히 드러나는 농사일처럼 교육도 그런 것이어야 될 것 같다」며「어른들이 재단한 눈에 보이는 점수나 성적 중심의 교육으로 우리 다음세대의 미래를 갉아 먹고 있지는 않느냐」고 묻는다.
96년부터는 40기구가 사는 조그만 도사리 마을의 반장으로 동네에센 빼놓을 수 없는 위치가 된 남편 오용석씨는 한명희씨의 큰 자랑거리다.서로 끌어주며 격려하며 일궈온 농촌에서의 삶이 이제는 한평생 농사일로 살아온 농사꾼들 속에서도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점이 한씨로서는 무척 기뻤다고 한다.
손님을 떠나보내기 위해 마당 한쪽에 이른 저녁을 차려내는 한씨네 식구. 풋고추와 된장, 삼겹살에 이웃이 가져오는 채소들로 채워진 빕상에 둘러 앉은 이들에게선 삶의 풋풋한 내음이 시골의 정취와 함께 진하게 풍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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