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부터 로마 주교는 베드로의 후계자라는 위치로 세계 교회를 이끈 중심 인물이었다.
교황의 수위권이 확립된 것은 레오 1세가 소집한 칼체돈 공의회(451)에서였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476) 후 교황은 교회 뿐 아니라 서유럽의 수호자로 등장했고 6세기말 그레고리오 1세 교황에 이르러 황제의 압력을 물리치고 중세 유럽을 형성하게 됐다.
하지만 7세기 초까지 콘스탄티노플 총주교들이 수위권에 도전, 동서 교회의 분리 소지를 안고 있었고 그후 10세기까지 수위권 행사는 어려움을 겪었다.
11세기의 사회 불안과 왕권과의 다툼 등의 요인으로 결국 1054년 동방교회는 로마교회와 관계를 단절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교황의 권위는 서방에 국한됐고 14세기에는 여러 명의 대립 교황들이 출현했으며 문예부흥 사조와 지리상의 발견으로 서유럽의 중심으로서의 교황의 위치는 사실상 흔들리는 가운데 종교개혁을 맞게 된다.
1545년부터 약 18년간에 걸쳐 바오로 3세, 율리오 3세, 비오 4세의 주재로 열린 트리엔트 공의회로 교회는 개혁을 시도했다. 이단을 배격하고 교회를 체계화하며 교회 생활의 모든 분야를 혁신하는 조처를 취한다. 비오 5세, 그레고리오 13세, 식스토 5세 교황은 공의회의 결의를 충실하게 실시했다.
하지만 17, 18세기에 정교분리 사상이 강력히 대두되어 속사에 대한 교황의 간섭권은 크게 약화됐다.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의 승리, 19세기에는 근 1천년간 유지된 교황 영토가 이탈리아에 합병, 교황의 속권은 영구히 무산됐다.
교황 비오 1세가 소집한 제1차 바티칸공의회는 속권에서 벗어난 교권을 확고히 확립했고 현대의 사회문제에도 훌륭한 지침을 제시했다. 이후 위대한 교황들이 속출했다.
레오 13세는 민주주의를 승인하고 노동 문제에 빛을 던졌으며 비오 10세는 근대주의를 단죄하고 전례운동을 촉진했다. 베네딕도 15세는 교회법을 개혁하고 비오 11세는 공산주의를 단죄하면서 사회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했다. 비오 12세는 성모승천교리를 선포했는데 이때 동유럽의 공산화라는 고통을 겪는다.
이러한 쇄신의 면모 속에서도 여전히 세계는 더욱 탈 그리스도교화했다. 이때 역사적인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개최된다. 요한 23세 교황은 교회의 쇄신과 개방을 위해 공의회를 소집했고 이후 바오로 6세와 요한 바오로 2세는 공의회 정신 구현을 위해 노력함으로써 교황은 교회 뿐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인류의 영혼을 이끄는 정신적 지도자로 인정받고 있다.
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제264대 교황이다. 하지만 교회사 속에서 역대 교황들에 대한 완전하고 정확한 목록을 작성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각 교황들의 합법성 여부도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일단 1947년 교황청 연감에 발표된 역대 교황 목록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교황주일 특집] 교회사 속의 교황들
인류의 구원 이끄는 영적 지도자
레오 1세 교황 수위권 확립
레오 13세는 「노동헌장」반포
비오 12세 승모승천 교리 선포
발행일1998-06-28 [제2108호, 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