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한 책걸상도 시간표도 없다. 개울, 논과 밭, 자연을 교실 삼아 아이들 스스로 시간표를 만들어서 하루를 지낸다
11년전에 설립한 두밀리 자연학교, 「신나게 놀자, 맛있게 먹자, 달콤하게 자자」가 교훈
“두밀리는 고향을 잃어버린 아이들에게 고향을 찾아 줄것” …10년 전 초등학생이 어엿한 대학생 되어 다시 찾는 곳
다가온 방학, 점점 뜨거워지는 볕에 아이들도, 옥수숫대도 하루게 다르게 쑥쑥 자라는 여름. 아이들의 여름나기를 걱정하는 학부모들에게 대안(代案)학교는 신선한 감동으로까지 다가온다.
이미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대안학교 두밀리자연학교. 경기도 가평의 숲속에 위치한 이 학교의 교실은 마을 앞 개울, 논두렁 밭두렁이다. 딱딱한 책걸상도 답답한 시간표도 없다. 대신 아이들은 스스로 하루의 일을 정하고 실천하면서 자율을 배운다.
그래서 두밀리자연학교에는 제각각인 시간표가 수십개씩이나 된다. 선생님은 따로 필요없다. 있어도 특별히 가르쳐 주는 게 없다. 맑은 시냇물, 그 속에 노니는 물고기와 가재, 들판에 지천인 꽃과 풀들, 밤하늘을 흐르는 은하수가 아이들의 진정한 교사일 뿐.
덴마크에서 사회교육을 배우고 인도에서 간디와 타고르의 사상을 체험하고 귀국, 장기려 박사와 청십자운동을 조직하던 중 불의의 교통사고로 전신 3도 화상을 입는 잔혹한 역경을 딛고 정열적으로 교육활동을 벌이고 있는 채규철(60) 교장이 자연주의 교사 박평용 선생과 함께 11년전에 설립한 두밀리자연학교는 「신나게 놀자, 맛있게 먹자, 달콤하게 자자」가 교훈인 이상한(?) 학교다. 그러나 이젠 어른도 자녀와 함께 아득한 어린시절「외갓집」추억으로 돌아가는 자연휴식처가 된 곳이다.
3년전에야 겨우 포장된 두밀리 진입로 옆 돌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시골에서나 봤음직한 나무다리와 그 건너「푸른 숲할아버지」와「맑은 물할머니」장승이 아이들을 맞는다. 다리 아래 두밀천은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가장 훌륭한 학습장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물가 돌을 들춰 교과서에서나 봤던 플라나리아, 엽새우같은 생물들을 발견하곤 눈이 휘둥그레지기도 한다ㆍ 「어린이들에게 최고의 교육은 풀어주는 것」이라는 말이 두밀리 자연학교만큼 어울리는 곳이 드물 것 같다.
채규철 교장은『어른들의 손으로 아무리 의미있는 프로그램을 짜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어른들의 눈으로 보는 세상을 반영하는 것일 뿐』이라며『결국 어린이들에게는 노는 게 최고』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두밀리자연학교는 「프로그램 없음」이 프로그램이라면 프로그램이다.
방학을 앞두고 벌써부터 성화를 부려대는 악동 70여 명을 이끌고 7월초 두밀리자연학교를 찾은 서울 신월동 한 초등학교의 박모 교사는 『학력이 무엇보다 우선시되는 교육풍토 속에서 아이들은 아이다움을 잃어가고 있다』며 『자연 속에서 당당해지는 아이들의 모습 때문에 이곳을 찾지 않을 수 없다』고 털어놓는다.
박 교사는 올해로 7년째 두밀리를 찾는 단골. 정규교육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학교의 눈치를 봐가며 의기투합한 몇몇 교사와 몰래 찾는 곳이지만 이미 두밀리는 이들은 물론 학생들과도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고 말았다.
『두밀리는 고향을 잃어버린 아이들에게 고향을 찾아줄 것』이라는 송 교사의 대답은 자연학교의 존재 근거를 가장 간명하게 드러내준다.
토요일 오후 두밀리자연학교에 도착한 어린이들은 개울에서 물놀이를 하고 지천으로 깔린 잠자리, 개구리를 잡느라 정신이 없다. 봄에 심어 놓은 옥수수와 고추를 놀이삼아 따모은 아이들은 저녁반찬과 간식거리로 내놓는다. 거칠것이 없다. 아이들이 뿌리고 다른 아이들이 가꾸고 또 다른 친구들이 먹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는다. 아이들간에는 학교 어디에서도 쉽게 찾아 보기 힘든 끈끈한 동료애가 이미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낯도 모르는 친구들에 대한 배려, 언젠가 그 친구들이 또 씨를 뿌려 자신이 먹을 옥수수를 키워놓을 것이라는 믿음, 두밀리는 그렇게 아이들의 믿음을 먹고 10여년을 자라 왔다.
아이들에게 밤은 또 하나의 세상. 모닥불을 피워놓고 캠프파이어를 하며 탈춤도 배워보고 명상의 시간을 가져 본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여느 캠프에서처럼 취침시간이나 기상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 친구들과 밤 늦도록 평소에 하지 못했던 얘기를 나누고 노래를 부르다가 자고 싶을 때 자고 이른 아침 우는 장닭소리에 잠이 깨면 그때 일어나면 될 뿐이다.
토요일 새벽 4시, 밤새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던 꾸러기 10여 명이 채 교장의 막사를 찾았다. 보기 흉하게 일그러진 채 교장의 얼굴도 이들에겐 장난스럽게 비쳐질 뿐이다. 장난기가 발동한 채 교장도 새벽잠을 깨운 악동들에게 20년 묵은 인삼주 한모금씩을 물리고 정겨운 얘기로 밤을 함께 샌다. 두밀리의 낮과 밤은 이렇게 오고간다.
10년전 다녀간 초등학생이 어엿한 대학생이 돼 다시 찾는 곳, 두밀리자연학교는 아이들 뿐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마음의 고향이 되어가고 있다.
[여름방학 특별기획] 우리 아이, 대안학교로 보냅시다 (1) 「두밀리 자연학교」
“최고의 교육은 풀어 주는 것, 어린이들에겐 노는 게 ‘최고’ ”
발행일1998-07-19 [제2111호, 9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