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꼬란 논에 물이 넘어 들어가거나 흘러가게 만든 어귀를 가리킵니다. 물꼬는 아이들의 숨통이 되고 싶습니다. 물꼬는 세상 숨통이 되고 싶습니다…」
논물이 웬만큼 차오를 때나 말라 들어갈 때 농부는 모든 일을 제쳐두고 물꼬부터 본다. 물꼬를 제때 틔워주거나 막아주지 않으면 그 해 논농사는 망쳐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농부의 됨됨이를 엿보려면 그 논의 물꼬 생김새를 보면 안다고 했다.
서울 마포구 동교동 네거리 경의선 철로변에 위치한 「자유학교를 준비하는 모임 물꼬(대표=옥영경)」
찌든 도시 속에 묻혀 우선은 터질 듯 넘쳐나는 물방울들의 숨통이 되고자 하는 물꼬는 언뜻 보면 대도시 어느 곳에서든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여느 놀이방과 비슷하지만 이 곳에 하루만 있어 보면 적잖은 느낌, 때로는 신선한 충격에 사로잡힐지도 모른다. 자율교육의 물꼬를 튼다는 의미에서 지은 이름에서 보여지듯 이곳에서는 틀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놓고 뛰어놀수 있는 아이들의 천국을 엿볼 수 있다.
물꼬에는 환경미화에 딱딱한 게시판에다 규격에 맞춰 짜여진 책걸상 등이 떠오르는 교실은 없다. 아이들의 솜씨가 느껴지는 새끼줄, 아이들의 웃음이 밴듯한 그림판이 있고 북소리가락에 맞춰 목소리를 가다듬는 아이들의 진지함이 있을 뿐이다.
89년 옥씨를 비롯한 몇몇 교사들의 글쓰기 모임인 「열린 글, 나눔 삶터」를 모태로 시작된 물꼬는 평소에는 방과 후 학교로, 방학 때에는 계절학교로 아이들을 만난다.
생긴 지 10년도 채 되지 않은 학교지만 입을 통해 알음알음 알려져 이제는 꽤나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계절학교 중 하나가 됐다.
아이들의 여름과 겨울방학을 이용해 산과 바다 등에서 펼쳐지는 물꼬의 계절학교는 방학이 시작되기 몇 달 전부터 신청자가 차 버리는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 7월 17일 오전 7시 서울역 광장의 한 모퉁이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으로 잠을 깨고 있었다. 이날부터 2박 3일간 여름 계절학교를 떠나는 아이들의 설레임과 아이들을 배웅하러 나온 부모들의 기분좋은 흥얼거림이 어우러지면서 이들의 여름은 시작되고 있었다.
엄마아빠와 처음 떨어져 보는 아이에다 기차를 처음 타보는 아이, 친구들과의 나들이가 낯선 아이들. 이들이 찾은 곳은 기차로 세시간 여를 여행해 또, 버스로 한시간은 족히 들어가야 닿는 충북 영동군 대해리의 자유학교 터.
한시도 그칠 틈이 없는 아이들의 재잘거림도 모둠(분반)활동시간에는 진지함으로 바뀐다. 들풀과 꽃을 찾아 손에 손 잡고 찾는 마을 길 어귀, 교문 옆, 운동장 한켠 등 모두가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학습장이다.
지난 봄 제손으로 심어논 감자캐기에 나설땐 아이들의 입에선 연방 탄성이 쏟아진다. 옷 염색하는 모둠활동시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옷을 만드는 동안 아이들은 진지한 예술가가 된다. 아이들은 또 이틀새 조각천 잇기, 모래 그림 그리기, 수직 공예, 매듭팔찌, 놀잇감 만들기, 냄비받침 만들기 등을 하는 열린교실에 찾아 들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한다. 이도저도 싫으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하면 그만.
이런 이유로 물꼬를 찾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 계절학교의 문을 자주 열지 않는다고 아이들 뿐 아니라 학부모까지 아우성(?)이다.
그렇다고 물꼬를 꾸려가는 교사나 일꾼들이 유별난 사람들은 아니다. 단지 아이들의 조그만 행복을 바라는 교육에 관심있는 평범한 어른들일 뿐이다. 자신의 삶을 투여해서 물꼬일을 하는 두레일꾼 20여명과 때때로 교사로도 불리는 품앗이일꾼 100여명, 경제적으로 후원해주는 논두렁 90여 명 등 200여명 의 어른들이 어린 나이부터 공부에 찌들어 가고 있는 아이들에게 희망의 물을 대고 있는 셈이다.
물꼬를 만든 옥영경 터장(대표)을 비롯한 「개인적으로 전형적인 우등생이었지만 늘 행복하지 않았던 청소년기의 기억」을 가진 어른들 하나하나가 다져진 물꼬의 흙이 된 것이다.
옥씨는 『「스트레스 받는 과학자보다 행복한 트럭 운전사」가 되는 바탕을 만들어 주는 교육을 통해 아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찾아주고 싶다』고 밝히고 『아이들이 나와 같이, 이웃과 같이, 자연과 같이 「더불어」하는 삶을 배울수 있게 함으로써 이 세상을 더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어가는 일이야 말로 우리 모두가 살아가면서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한다.
물꼬를 꾸려가는 일꾼들은 이제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2004년 충청북도 영동 대해분교터에 아이들이 마음 놓고 뛰어놀 수 있는 「자유학교」를 세우겠다는 원대한(?)꿈이다. 자신들의 꿈을 세울 영동에서 94년부터 열고 있는 계절학교도 이런 꿈을 실험해 나가는 한 과정인 셈이다. 「자유, 자율, 자치」를 기치로 세워질 자유학교는 일반 교과학습과정은 30%에 지나지 않은데다 일과 예술과 명상을 통한 교육, 아이들이 원하는 교육, 자유활동 등으로 꾸려질 예정이지만 그 누구도 특별히 걱정하지 않는다. 꿈을 여럿이 꿀 때 꿈은 더 이상 꿈에 머물지 않고 현실이 됨을 굳게 믿기 때문이다.
올 8월로 예정된 「중학생 계절학교」도 꿈을 꾸는 아이들과 어른들로 벌써부터 들썩이고 있다. 포항, 부산, 마산 등 지방은 물론 해외에서까지 소식을 전해듣고 찾는 아이들이 절반이 넘는 물꼬의 계절학교는 자유롭고 멋진 모습으로 자랄 미래의 작은 일꾼들로 열매를 맺어갈 것이다.
※문의=(02)3141-1002
[여름방학 특별기획] 우리 아이, 대안학교로 보냅시다 (2) 자유학교를 준비하는 물꼬 『충북 영동 계절학교』
공부에 찌든 어린이들에 물꼬를 트듯
「더불어 삶」 배우는 희망의 물 듬뿍 선사
2박 3일간 하고 싶은 프로그램에 자유롭게 참가
2004년 충북 영동 대해분교터에 「자유학교」 설립 꿈
발행일1998-07-26 [제2112호, 1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