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이 채 닿기도 전에 보이지 않는 캠프장에서 아이들의 싱그러움이 바닷바람을 타고 풍겨운다.
만리포, 몽산포, 꽃지 등 이름만 들어도 알수있는 명승지들이 널린 태안반도의 한쪽 귀퉁이에 자리잡은 사목해수욕장. 이곳에 마치 누구의 눈에라도 띌까봐 조심스레 자리를 튼 살레시오회 수련회관(관장=백승준 신부)은 여름캠프로 당당하게 대안교육의 꿈을 다져가고 있는 곳 중의 하나다.
길이 1km가 넘는 너른 백사장에는 살레시오회가 주관하는 여름신앙학교에 참가차 온 아이들 외엔 특별히 눈에 띄는 인파가 없다. 그래서 더더욱 아이들에겐 천국일지 모른다.
지난 93년부터 캠프장을 열어 올해로 6년째를 맞는 살레시오회의 여름캠프는 여느 여름학교와는 다른 냄새를 풍긴다. 여름내내 한명의 신부와 9명의 수사, 2명의 수녀들로 꾸려지는 이 학교는 그렇다고 특별한 과제를 가지고 아이들을 맞는 건 아니다.
오히려 신나는 체험, 색다른 놀이로 아이들을 사로잡는다. 2박 3일로 정해져 있는 여름학교 기간동안 아이들은 자신들을 옥죄어왔던 학교의 틀을 벗어버리고 하느님과 함께하는 참다운 학교를 체험하게 된다. 누구의 강의도, 누구의 간섭도 없는 놀이만이 이들의 시간표에 채워진다. 그래서 누구나 부담없이 따라 나서게 된다.
「우리는 작은 예수」로 이름붙여진 둘째날 프로그램 시간, 아이들은 하루종일 수영복 차림으로 해변에서 지낸다. 1~4단계로 나뉘어진 이 프로그램의 시간표는 다만 아이들이 놀기 좋게 쪼개놓은 것일 뿐 학교의 종소리가 들리는 꽉 짜여진 일과표가 아니다.
『미경아, 이쪽이야 이쪽!』
『주희야, 왼쪽으로, 좀 더 왼쪽으로!』
아이들의 터질듯한 목청이 오가는 이 프로그램은 다름아닌 「진흙탕 체험시간」
물꼬를 막아 만든 서너평 크기의 진흙탕에 둘러선 40여 명의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응원소리는 해수욕장이 떠나갈 듯 울려댄다. 진흙탕에선 수건으로 눈을 가린 20명의 아이들이 친구들이 질러대는 소리를 따라다니며 고무공줍기에 열을 올린다. 아이들의 옷은 너나할 것 없이 진흙투성이지만 오히려 즐겁다는 표정들이다.
연무, 부창동, 나운동, 송학동본당 등 제각기 다른 본당에서 온 친구들이지만 아이들에게선 어떤 어색함도, 거리낌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이 체험을 통해 진흙탕으로 비유되는 죄와 어두움의 공간을 빠져나오는 방법을 누구의 가르침없이 스스로 터득하게 된다. 믿음, 신뢰…. 아이들은 경쟁보다 먼저 배워야 할 것들을 느지막이 깨닫게 되는 것이다.
논산 부창동본당(주임=윤종관 신부)정선화(율리안나)양은 『언니 동생들과 아무 부담없이 사귀고 가까워질 수 있어 너무 좋다』며 『어른들이 생각하는 뭔가를 주입하려는 여름학교가 아닌 우리 스스로 찾을 수 있는 학교가 주위에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같은 시간 바다에서는 뗏목타기가 한창, 10여 척의 뗏목에 나눠 탄 아이들은 장대 하나에 의지해 신나는 물놀이를 벌인다. 지칠 만큼 실컷 놀고 바닷가에 오른 아이들에게 『뗏목은 어떤 의미였을까?』라는 한가지 물음이 던져질 뿐이다.
『망망대해, 험난한 바다에 비해 우리는 너무도 하찮은 존재들입니다. 뗏목은 항해하는 동안 우리들의 든든한 지지대가 되어줍니다. 뗏목이 없다면 여러분은 바다에 나설 용기를 얼마나 낼 수 있을까요. 뗏목은 마치 하느님이 우리에게 그러시듯 용기와 희망을 주지요』
서로가 끈으로 몸을 엮고 침묵 속에 산길을 따라 걸으며 묵상체험을 하는 「바오로의 미로」시간, 마음을 담은 편지를 써 친구들의 풍선과 함께 먼 하늘로 날려보내는 시간….
이렇듯 하나하나의 놀이 속에는 은연 중에 메시지가 담겨져 있어 이를 통해 아이들은 성령의 열매를 조금씩 맛보며 특별한 여름나기를 한다.
문을 연 이후 매해 여름마다 10여 차례에 걸쳐 2,500여 명이 찾고 있는 살레시오회 여름캠프는 지역을 가리지 않고 전국의 학생들이 오가며 정을 나눌 수 있다는 점도 꼽을 수 있다.
때로는 군산이나 이리의 아이들이 울산, 동두천 아이들과 한여름을 지내며 소중한 여름밤의 추억을 만드는가 하면 청주와 서울의 아이들이 당진, 광주의 아이들과 같은 방을 쓰며 형제처럼 가까워지기도 하는 곳. 그래서 이곳의 여름학교는 낮만큼이나 밤이 소중한 기억으로 남는 곳이다.
『우리 언제 다시 만날래? 꼭 편지해야 해』
『언니, 우리 집에 꼭 놀러 와야 해』
이들의 손가락 거는 약속이 아쉬움으로 그득한 것은 이곳을 한번 다녀가면 3년간은 다시 이용할 수 없다는 캠프장 나름의 규칙 때문. 보다 많은 아이들이 다채로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배려에서다. 단, 본당 등 단체별 참가만이 가능해 조금은 아쉽다.
※문의=수련회관(0455)675-7211
[여름방학 특별기획] 우리 아이, 대안학교로 보냅시다 (3) 살레시오회 수련회관 「여름캠프」
강의도 간섭도 없는 아이들의 천국
진흙투성이지만 얼굴엔 함박 웃음
올해로 6년째, 매년 2500여 명 참가
지역ㆍ본당 구분없이 한데 어울려 숙식
발행일1998-08-02 [제2113호, 1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