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 육체적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땅의 장애인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입지가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많은 장애인들이 사회의 따가운 시선과 편견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더구나 장애자녀를 둔 가족들은 장애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마음속에 항상 남다른.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이번에 서울 성동장애인종합복지관은 이런 장애형제를 둔 학생들을 위해 뜻있는 여름 캠프를 펼쳤다. 올해로 4번째 펼쳐지는 이 행사는 장애형제로 인한 심리적 부담감을 떨치고, 같은 상황을 가진 다른 친구들과의 토론을 통해, 장애형제와 원활한 관계형성을 맺도록 돕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가톨릭신문사는 7월 24~25일 1박 2일간 춘천교구 성산성당에서 열린 이 뜻있는「한마음 캠프」를 동행 취재했다.
7월 24일 오전 8시 30분 서울 성동장애인종합복지관. 부모님의 손을 꼭잡은 아이들이 하나 둘 복지관에 모여든다. 이날은 복지관에서 마련한 캠프가 열리는 날. 여행가방에 옷가지며 세면도구 등을 꼼꼼하게 챙긴 아이들은 여행의 기쁨 때문인지 조금은 흥분된 모습들이다.
홀로 떠나 보내는 마음이 편치 않아서 인지,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일일이 안전수칙을 상기시킨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참가 대상인 이번 캠프는 일반 캠프와는 취지가 사뭇 다르다. 참가 대상자는 바로 장애인 형제를 둔 아이들. 보내는 부모들이나 아이들 모두 이번 캠프가 의미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하나의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는 이들은 이번 행사를 계기로 장애형제를 둔 죄(?)로 받았던 고통을, 조금이라도 풀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아이들 지도는 복지관 담당수녀, 직원 2명 그리고 자원봉사교사로 참여한 대학생 4명이 맡았다.
정신지체 장애인 동생을 둔 초등학교 5학년 이소영(카타리나)양도 이번「한마음 캠프」에 참가했다. 소영이네 가족은 부모님과 동생까지 네식구. 소영이도 다른 아이들처럼 설레는 마음으로「한마음 캠프」에 참가했다.
오전 10시, 드디어 캠프장으로 출발. 버스 1대에 승차한 아이들은 처음 만나는 동료들과 이내 친해져 소근소근 정다운 얘기를 나누었다. 아이들은 모처럼 활짝 웃음꽃을 피우며 목적지인 강원도 성산으로 향했다.
버스로 3시간이 꼬박 걸려 도착한 강원도 홍천군 성산리에 있는 춘천교구 성산성당(주임=이동주신부). 이곳에 오자 이동주 성산본당 주임신부를 비롯한 모든 성당 관계자들이 이들을 반갑게 맞았다. 잠시 휴식을 취한 아이들은 인근 냇가에서 물놀이를 실시했다. 「풍덩 풍덩」.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편을 갈라 신나게 물싸움도 하면서 모처럼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물놀이가 끝나고 아이들은 간식으로 수박과 옥수수를 맛있게 나눠 먹기도 했다.
오후 4시. 재미있게 물놀이를 마친 아이들은 다시 성당으로 돌아와 가족화 그리기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이것이 이번 캠프의 가장 중요한 프로그램. 내용은 가족 소개를 그림으로 그리고, 가장 기뻤을 때와 슬펐을 때를 글로 써서 발표하는 것이다. 이번 프로그램은 장애형제들 때문에 받았던 마음의 상처를 털어 놓음으로써 서로 간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발전적인 의견교환을 통해, 현명한 해결책을 찾아 보자는 취지로 준비됐다.
아이들은 정성껏 발표를 준비했다. 드디어 발표시간. 아이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기회가 자주 없는 아이들로서는 이 프로그램이 상당히 긴장되면서도 기다려지던 시간이다.
정신지체 장애 형을 둔 올해 중1인 석호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석호는 형이 장애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지 않았던 것이 가장 슬펐다고 털어 놓았다. 끝내 울음을 터트리는 석호.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이것은 비단 석호 뿐만 아니라 여기 참가한 모든 아이들이 절실히 공감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석호는 하지만 앞으로는 떳떳하게 형을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최선을 다해 형을 돕겠다고 다짐했다.
소영이 차례가 돌아왔다. 간단하게 가족소개를 한 소영이는 동생이 웃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소영이네는 가정형편이 매우 어려웠다. 막노동을 하는 아버지가 벌어 오는 것이 생활비의 전부. 네식구가 방 한칸에서 힘겹게 생활하고 있었다. 소영이는 최근 동생문제로 아빠, 엄마가 싸울때 가장 슬펐다고 고백하며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동생이 장애인이라는 것이 처음엔 무척 이상하고 싫었다는 소영이. 하지만 장애학교에 가보고, 그곳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장애가 절대로 흠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소영이는 왜 사람들이 자기 동생을 이상하게 여기고 무시하는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제는 동생이 너무 사랑스럽고 잘 해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소영이가 자신의 글을 울먹이며 읽어 내려가는 동안 주위는 온통 울음바다가 됐다. 소영이의 그 애절한 심정이 너무나 가슴에 와닿았기 때문이다. 뒤이어 격려의 말도 잇따랐다. 올해로 3번째 이 캠프에 참가하고 있는 중3인 최란이는 소영이에게 지금의 그 마음을 동생에게 충분히 표현하고 계속해서 사랑해줄 것을 당부했다.
모든 발표가 끝난 후 조성갑(안나)수녀는 총평을 통해『장애형제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과 관심』이라면서『우선 가정안에서 이것이 잘 실천되면 분명히 사회가 장애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잘못된 편견을 없앨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용기를 가지고 모두 파이팅하자』고 격려했다.
훈훈한 감동의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담아 두었던 아픈 상처를 시원하게 풀어 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저마다 새롭게 각오를 다질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됐다.
저녁식사후 이어진 촛불의식, 촛불을 하나씩 손에 든 아이들은 어두움을 밝히는 촛불처럼 장애형제들에게 빛이 되어줄 것을 다짐했다. 이 세상에는 자신 말고도 이런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체험한 아이들. 이젠 여기서 만난 친구들이 있기에 외롭지도, 힘들지도 않을 것 같다. 좋은 동반자로서 서로에게 큰 힘이 되어줄 것으로 이들은 굳게 믿고 있다.
둘째날 오전 일정을 마친 일행은 버스에 올랐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아이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것을 느끼고 상쾌한 기분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소영이는 동생이 무척 보고 싶어진다. 혹시 자신을 찾으며 울지는 않았을까? 마음은 벌써 동생에게로 달려가 있다.
소영이는 버스를 타고 오며 결심했다. 앞으로 영원히 동생을 사랑하며 보살피겠다고.
[르포 - 뜻있는 여름나기] - 장애형제 둔 청소년대상 ‘한마음 캠프’
“이젠 진정 사랑 할 수 있어요”
“장애형제들에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과 관심”깨달아
캠프통해 「남다른 아픔 심리적 부담」덜어
“떳떳이 남들에게 소개”자심감 선사
“장애는 흠이 아니다”의식 개선
가정에서부터 편견 없애야
발행일1998-08-02 [제2113호, 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