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대주교 수해지역 방문 격려
“공동체가 합심해 고난 극복” 당부
“사랑의 모범을 보여 줍시다”
『피해가 심할수록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가집시다. 용가를 잃지 말고 하느님을 믿고 성모님께 의탁해야 합니다. 모든 신자 공동체가 합심해서 고난을 극복하는 사랑의 모범을 보여주십시오』
8월 16일 하루종일 수해지역을 돌아본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대주교는 어떤 고난도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모든 이들이 이웃과 어려움을 나룰 것을 요청했다.
정대주교는 나흘간의 고된 정기검진 일정을 마치자마자 14일 잠시 쉴 틈도 없이 저수지가 유실된느 등 극심한 피해를 입은 의정부 한마음수련장을 찾은데 이어 이날 경기도 지역의 수해지역 본당을 방문해 위로하고 성금도 전달했다. 방문 지역은 금촌, 법원리, 갈곡리, 동두천, 전곡 등 모두 이번 수해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들이다.
오전 9시 30분 교구청을 떠난 정대주교는 11시가 조금 못돼 첫 방문지인 금촌본당에 도착해 300여 명의 신자들을 만나 위로했다.
연일 계속된 비로 힘들고 지쳐 있던 신자들은 오랜만에 보는 환한 해와 함께 정대주교의 따뜻한 위로로 그 동안의 시름을 다소나마 씻은 듯 함박웃음을 지었다.
빡빡한 일정으로 숨도 돌리지 못하고 차를 몰아 법원리본당을 들렀다.
신자들을 만나 위로하고 20여 분만에 점심 식사를 마친 정대주교는 전체 주민 중 90% 이상이 신자로 교우촌이라 할 수 있는 갈곡리 공소를 찾았다.
정대주교가 탄 차가 공소 입구로 들어서자 도착을 알리는 종소리가 폐허가 되다시피 한 계곡에 울려퍼졌고 신자들이 모여들었다. 훼손된 공소 성당에 들어서 벽과 천장을 둘러보던 정대주교는 공소회장 조병현(베드로)씨의 『이 성당은 박해시대 피난처 였다』라는 설명을 들으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인근에서 복구작업을 하던 군인들을 격려한 정대주교는 이어 동두천성당으로 향했다.
동두천은 시내 거의 전체가 물에 잠겨 엄청난 피해를 입은 지역으로 본당 신자1천2백여 세대 중 250여 세대가 침수됐다. 사제관에서 피해 상황에 대한 보고를 듣는 도중에도 여러 차례 시내를 돌아 다니는 소독차의 소음이 들려왔다. 마지막 방문지인 진건성당에 들른 정대주교는 비닐하우스 등 주로 농사일을 하는 신자 피해가구를 직접 방문했다.
좁은 농로를 따라 진건면 진관리 158-1 김덕래(베드로ㆍ47)씨와 진관2리 914-44 허만용(마태오ㆍ62)씨 등 몇 군데 피해 신자들의 집을 찾았다.
방안은 머리 위까지 물이 올라 왔던 흔적이 역력했다. 정대주교는 아직도 질척한 마당에 세간을 다 내다 말리고 있는 집주인 허씨의 손을 잡은 채 안쓰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고단한 일정을 마친 정대주교는 내내 동행한 기자들에게, 다시 한번 『모든 신자들이 「사랑의 모범」으로 피해를 입은 이들과 어려움을 나눠 줄 것』을 강조했다.
하루종일 강행군했던 육체적 피로보다는 수해를 입은 이들의 고통스러운 모습들이 오히려 더 정대주교를 힘들게 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 결핵환우들 안식처 경기도 파주「시몬의 집」과 「우양의 집」
“우리들 삶의 터전 없어졌어요”
조금만 삽질해도 숨이 턱에 차
온정의 손길 뜸해 마음까지 수해 겪은 듯
재활의 희망 북돋아 줄 사랑 필요합니다
『숨이 차서 일을 하려도 할 수 없어요. 도와주세요』
이번 수해로 경작지가 유실되고 삶의 터전이 침수돼 복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시몬의 집」과 금촌 하지석리 「우양의 집」가족들.
이곳에 수용돼 있는 가족들은 모드 음성 결핵이나 페결핵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다.
결핵균에 파먹혀 절반도 남지 않은 폐로 중노동을 하기란 이들에게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다. 조금만 삽질을 하고, 흙을 쓸어도 금방 숨이 턱에 찬다. 물먹은 가구를 볕에 말리기 위해 집밖으로 내놓을라치면 하늘이 노랗고 별이 보일 정도다.
이번 물난리로 남들 못지 않게 피해를 입었건만 찾아오는 온정의 손길은 뜸해 마음까지 수해를 겪은 듯 서글프기만 하다.
물이 없어 오물을 뒤집어쓴 몸을 제때 씻지 못한 탓인지 수녀들조차 피부병의 가려움을 이기지 못해 목과 팔이 벌겋게 달아 있다.
결핵을 앓던 가족의 생명이 위독해 시설을 찾아 온 한 봉사자의 차를 빌려 타려다 매몰차게 거절당해 그 한이 서러워 운동화 몇 컬레가 떨어질 정도로 사방팔방 뛰어다녀 봉고차 한 대를 구했다는 「시몬의 집」원장 피영희(요한나) 수녀는 『군인들조차 다른 수해지역 복구작업에 투입돼 도움의 손길을 구하기 어렵다』며 막막해 했다.
산자락을 휘감아 집을 덮친 수마로 먹을 것마저 다떠내려가 한때 끼니조차 걱정스러웠던 시몬의 집 식구들은 서울 가톨릭 사회복지회가 지원한 김치로 모처럼 굶주림을 해결할 수 있었다.
힘없는 이의 설음을 겪기란 「우양의 집」가족들도 마냥 한가지였다. 인근 금촌본당에서 국수와 라면, 김치, 밀가루등을 지원해 줘 어느 정도 먹을거리는 해결했다 해도 새로 도배를 하고 물먹은 가구를 씻고, 토사에 휩쓸린 고추밭을 살리려니 약할대로 약해진 몸으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또 8월 14일 현재까지 통신조차 복구되지 않아 어디에도 이 갑갑함을 하소연 할 수 없어 가슴이 더 저며오기만 한다.
『온정의 손길없인 삶터를 되살리기란 실로 어렵다』는 피요한나 수녀는 결핵 요양원 가족들에게 재활의 희망을 북돋아줄 사랑을 호소했다.
[르포] 수해 현장을 가다
봉사자들의 땀 눈물 겹지만 “보다 많은 사랑 필요해요”
발행일1998-08-23 [제2116호, 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