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해복구지역 다녀온 서울대교구 수해긴급대책위원회
8월 8일 오후 심상치 않은 빗발이 간간이 뿌리는 가운데 의정부시내 한복판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찻 속에 묶여 꼼짝도 못하고 발을 동동거린게 세시간여, 서울대교구 가톨릭 사회복지회 박인선 신부를 비롯한「서울대교구 수해 긴급대책위원회」관계자들은 창밖을 내다보며 연거푸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8월 6~7일 이틀 동안 내린 비가 수마로 변해 살림살이와 집은 물론 사람마저 적잖이 집어 삼켜 버렸다는 소식에 뜬눈으로 지새다 시피했던 이들은 날이 밝자마자 수해복구지원에 팔을 걷고 나선것이다. 우선 급히 세 단체가 5천만 원씩을 내놔 당장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에 손길을 뻗쳤다. 이어 보다 자세한 피해 상황 파악으로 적절한 지원활동을 펴기 위해 세팀으로 나뉜 대책위원들은 동두천, 파주, 고양시 등 수해피해지역을 직접 찾아 나섰다. 그러나 이들은 한결같이 끊어진 길로 인해 자신들의 더딘 발걸음을 한탄해야 했던 것이다. 간간이 휴대전화로 서로 나눠들을 수 있는 곳곳의 피해상황은 예상 외로 커 아픈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밤이 어둑해져서야 근근이 피해지역을 둘러보고 모인 이들은 늦은 밤도 개의치 않고 대책마련에 분주해졌다.
이튿날부터 이들 중 한 부류의 사람들은 불광동성당으로 향했다. 특히나 피해가 심한 경기북부지역을 돕기 위해선 이곳만큼 마땅한 전진기지도 없었다.
끊임없이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가 빗발쳤다.
『식수가 모자란다, 입을 옷 덮을 이불이 없다, 치료할 약 좀 달라…』
그러나 이런 모든 소리에 구원의 손을 일일이 뻗치기엔 10여 명의 대책위 사람들로는 손길이 턱없이 모자랐다. 그 어느때보다 일찍 집을 나선 발걸음도 또 그 어느때보다 늦게 집을 찾아들어야 했다. 그렇지만 누구 한나 불평하지 않았다.
『교회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여기는 사랑의 정신을 이번처럼 확실히 경험한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거의 일주일 동안 수재현장에서부터 의연품 배달현장 등을 꼬박 쫓아다니다시피한 사회복지회 유영훈(스테파노)씨는『자신의 처지를 돌보기에 앞서 교회일을 스스로 챙기고 나서는 신자들을 보며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파주「시몬의 집」, 어렵사리 도착한 이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눈물겨운 광경에 대책위 관계자들은 다시 한번 가슴 뭉클함을 느꼈다. 쓸려나간 보금자리를 보다못한 이곳의 환자들이 저마다 누워있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던 것이다. 이들의 자립기반이었던 논밭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곳곳에 생긴 물웅덩이만 그간의 피해를 말해주고 있었다. 눈길 닿는 곳마다 가슴아픈 사연을 가슴 한곳에 차곡차곡 쌓아야 했던 박이선 신부는『이번 수해는 하느님이 주신 자연과 하나가 되지 못한 인간 스스로가 불러들인 인재(人災)』라며『보다 환경친화적인 복구와 개발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복구가 한창이던 일주일간 대책위가 꾸려졌던 사회복지회 사무실은 오히려 사람의 그림자를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부족한 일손을 메우려 너나할 것 없이 복구의 현장에서 살다시피했던 것이다. 그런 이유에선지 피해복구는 놀랄 정도로 빠르게 진척돼 보름이 지난 현재는 여유로움마저 감돌고 있다.
『사랑이 있는 곳에 하느님이 함께 하심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수해현장에서 만난 피해주민의 한마디는 대책위 관계자들의 활동이 곧 그리스도의 손길이요 분신임을 확인케 해주었다.
◆수해로 터전 빼앗긴 장애인 복지시설 애덕의 집
은인들 도움없인 ‘재건’ 불가능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8월초 경기도 북부에 내린 집중호우로 5억여 원 상당의 큰 피해를 입은 경기도 고양에 있는 장애인 복지시설「애덕의 집」 가족들이 도움의 손길을 호소하고 있다.
성한 데라곤 어느 한곳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수마가 속속들이 할퀴고 간 뒷자리는 전장터를 방불케 하고 있다.
애덕의 집 진입로부터 시작해 건물주변 산책길의 모든 보도블록은 물산에 헤집어져 군인들이 흙을 담은 마대로 폐인 곳인 메워 겨우 다닐 수 있게 됐다.
지난 8월 9일부터 인근 부대 군인들과 운전기사사도회원, 서울 응암동, 화정동, 능곡 본당 신자들이 복구작업을 도와주고 있지만 워낙 피해가 심해 별표시도 나지 않는다.
「신망애의 집」과 「나눔의 집」등지에 긴급 대피시켰던 30여 명의 가족들도 21일 현재까지 아직 다 데려오지 못하고 있다.
『홍수를 입고 난 후 2-3일간은 어떻게 조치를 취할지 깜깜했습니다. 단전, 단수는 물론 통신마저 불통이어서 연락도 취하지 못하고 암흑천지에서 살아야만 했죠. 밥을 해먹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식수로 사용하던 지하수마저 단전으로 퍼 올리지 못해 물조차 마실 수 없었습니다』
1층 건물 안에 10cm이상 도사가 쌓이고, 지하 물리치료실과 교육실의 기재들이 모두 침수돼 쓸 수 없게 되었지만 수녀들에겐 더 큰 걱정이 있다.
수마가 애덕의 집 뒷산에 폭 1.5m가 넘는 계곡을 새로 만들어 놓고 갔기 때문이다. 새로 난 계곡에는 쓰러진 나무들과 겨우 버티고 있는 집채만한 바위들이 수없이 얽혀있다. 현장을 둘러본 군인들마저『무서워 손을 못대겠다』고 말할 정도다.
삼양건설 토목기술자들을 불러 실사를 하기로 한 애덕의 집 수녀들은『겨울이 오기 저네 빨리 복구를 해야지 방치해 두었다간 봄에 땅이 녹을쯤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다』고 두려워했다.
아직 식수가 완전 복구되지 못해 인근 용미리 묘지까지 가서 먹을 물을 길러 오고 있는 애덕의 집 가족들은 은인들의 따스한 손길로 하루빨리 완전복구 돼 안심하고 겨울을 보낼 수 있길 희망했다.
◆ 안동교구 화동공소회장 유기농장서 자원봉사활동한 권명오(미카엘)씨
나눔과 과심으로 수해극복
『처음 이곳에 왔을때는 정말 참담했습니다. 수마가 할퀴고간 자리가 너무나 비참하더군요. 이번 수해로 피해를 입은 모든 분들이 용기잃지 않고 다시 일어서길 바랍니다』
안동교구 화령본당(주임=박윤정 신부)관할 화동공소 최병수(요셉) 회장이 운영하던 유기농장이 이번 수해로 큰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권명오(미카엘ㆍ31)씨. 대구에서「성서공동체」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권씨는 회원 25명과 함께 이곳에 달려왔다.
최회장은 이번 수해로 3억7천만 원의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유기농의 좋은 모델로 인정받던 이 농장이 이제는 진흙투성이의 폐허가 돼버렸다.
3년전 화령본당「생명공동체」와 자매결연을 한「성서공동체」는 그동안 여름마다 이곳으로 농활을 와서 함께 땀흘리며 생명의 결실을 체험하곤 했다.「성서공동체」는 젊은 대학생, 직장인들 중심으로 운영되며, 회원들은 성서 말씀을 생활속에 실천하기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회원들은 자연환경운동에 관심을 쏟으며 최씨가 벌였던 유기농 운동에 적극 동참해왔다.
권씨는 그동안 불우 청소년들에게 남다른 애착을 가져왔다. 청소년들을 위한 공부방을 개설한 그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사랑을 실천했다.
『사랑은 나눌수록 서로에게 기쁨과 보람을 주더군요. 특히 이곳에서 보여준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헌신에 크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함께 하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일로 확실히 체험할 수 있었어요』
권씨는 회원들과 함께 직접 밥을 지어먹으며 유기농장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온종일 쉴틈없이 일해 땀이 뒤범벅이 됐지만 누구하나 피곤한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권씨는 농장에 쌓인 진흙을 걷어내고 세척작업을 해나가면서 이 유기농장이 하루빨리 복구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권씨는 이번 수해가 모두 지구 환경을 어지럽힌 우리 탓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작은 생명도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마음들이 절실할 때라고 덧붙인다.
『지금은 모두가 힘을 모을 때입니다. 졸지에 생활터전을 잃어버린 수재민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도와야죠.』
비지땀 흘리며 열심히 봉사하고 있는 권명호씨. 작은 사랑을 실천할 줄 아는 그의 모습에서「내 이웃을 내몸같이 사랑하라」는 성경 말씀이 떠오른다.
◆ 수마로 공장잃은 원풍일(로렌조)씨
“언젠간 좋은날 오겠죠”
지난 96년에 이어 금년 8월 경기도 북부지역 집중호우로 또 다시 수해를 입은 경기도 문산 원일건재 대표 원풍일(로렌조)씨.
벽돌, 블록 등 건축자재를 생산하고 있는 원씨는 3천여 평의 공장이 침수, 1억5천여만 원의 피해를 입었다.
원씨는 96년도 수해가「천재」였다면 금년 수해는「인재」라는 점에서 더욱 원통해하고 있다.
문산시가 시가지 침수를 막기 위해 물길을 시가지 외곽에 있는 공장 쪽으로 돌리는 바람에 수재를 입었다는 것이 원씨의 주장이다.
『다수를 위해 소수가 피해를입는 것은 어느 정도 감내할 수 있지만 앞으로 큰비가 올 때마다 계속해서 피해를 보게 된다면 곤란하다』는 원씨는『이번 수재는 시외곽지에 살고 있는 서민들의 권리를 무시한 시당국의 전횡적이고, 일방적인 행정조치가 안겨준 인재』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원씨의 부인 김순자(세레나)씨는『시내로 들어가는 지하차도조차 막아 통행을 통제하고 있다』며『한번 더 물이 차면 다시는 이곳에 못살 것 같다』고 말했다.
『시에서 배수 펌프를 설치, 비가 와도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구한 원씨는『이번 수해를 입은 농민들과 연대해 시청에 민원을 넣었으나 소수의 목소리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열심히 살면 좋은 날이 오겠죠』라며 물이 잠긴 크레인 모터를 수리해야 하니 바쁘다고 재촉하는 원씨의 눈에는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오기가 서려 있었다.
교회 수해 복구 현황…그래도 절망은 없다
눈물겨운 복구현장, 사랑이 ‘넘실’
전장 방불케하는 참혹한 수해지역
대책위, 파주ㆍ동두천ㆍ고양시 등 방문
부족한 일손…열정과 노력으로 해결
발행일1998-08-30 [제2117호, 11면]